재개발 현장의 그림자
오전 아홉 시의 북항은 잿빛 안개에 젖어 있었다. 바닷바람을 탄 눅눅한 소금기에 부식된 철골의 녹린 냄새와 유류 탄내가 엉겨 붙었다. 대한케미칼 현장 사무실 소파에 단정히 앉은 정우진은 회색 정장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플라스틱 출입증을 테이블 위로 밀어냈다.
"사업은 위험을 감수하는 자에게만 보상이 따릅니다. 사흘짜리 임시 출입증이니 선은 넘지 마시죠."
공손한 어조 밑에 비릿한 조소가 깔려 있었다. 기주는 대꾸 없이 출입증을 집어넣었다. 코트 안주머니 깊은 곳에는 방독마스크 파편 대신 묵직한 휴대용 탄화수소 검출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무실을 나서 현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붉은 완장을 찬 사설 경비 둘이 기주의 뒤를 바짝 붙었다. 굴착기가 메마른 흙을 파헤치는 굉음 속에서도 감시의 시선은 끈질겼다. 노후 공장의 그을린 슬레이트 잔해 뒤편으로 접근하려 할 때마다 경비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쪽은 발파 예정 구역이라 접근 금지입니다."
대놓고 길을 막아서는 꼴이었다. 기주는 낡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입가를 쓸어내렸다. 10년 전 서해창고의 폐허에서도 똑같은 놈들이 진실을 덮으려 길을 막았었다. 기주는 짐짓 물러서는 척하며 시선을 위로 굴렸다. 녹슨 H빔에 매달린 볼록형 보안 카메라가 일정 주기로 천천히 모터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지게차가 낡은 드럼통을 나르며 매연을 뿜어 올리는 순간, 카메라의 렌즈가 반대편 차광막을 향해 꺾였다. 사각지대였다.
기주는 매연의 틈을 타 무너진 창고 뒤편의 가설 컨테이너 밑그림자로 몸을 던졌다. 경비들의 거친 고함이 엉뚱한 적재장 쪽으로 흩어졌다.
컨테이너 배면, 기름때 묻은 방수포 아래 숨겨진 철제 캐비닛의 빗장을 꺾었다. 퀴퀴한 종이 냄새 사이로 타르 냄새가 훅 끼쳐왔다. 기주의 거친 손가락이 서류철을 낚아챘다. 대한케미칼의 직인이 찍힌 이중 매매 계약서와 사전 철거 확약서였다. 불이 나기 보름 전에 이미 체결된 재개발 보상금 편취 계약.
불을 지르고 돈을 나누는 자들의 이름이 활자 밑에 썩은 물처럼 고여 있었다. 기주는 서류를 코트 안쪽으로 쑤셔 넣었다. 가슴팍이 돌덩이라도 얹힌 듯 무거워졌다. 10년 전의 불길은 결코 꺼진 적이 없었다. 단지 이름을 바꾸고 더 거대해졌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