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스폿 -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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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침묵의 연대

지하 수장고 복도의 공기는 차가웠다. 영하로 떨어진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구두 소울을 타고 발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백색 형광등 아래로 미세한 먼지 입자들이 느리게 낙하했다. 임소현은 자외선 감식등의 보랏빛 불빛이 자신의 소매를 비추는 순간 미세하게 눈동자를 흔들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얼굴은 차갑고 오만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제 감정 결과에 의문을 가지시는 건가요?"

임소현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경테를 검지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한도진을 응시했다.

"이 수장고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그 도료는 정기 점검 과정에서 묻은 것뿐입니다. 물리적 증거라고 우기기엔 너무 빈약하군요."

"점검일지와 환기 시스템 로그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한도진은 태블릿 화면을 내밀지 않았다.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데이터는 충분했다.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환기구 댐퍼가 열리기 5초 전, 내부 온도가 하강했습니다. 외부 침입이 불가능한 구조에서 이 온도 조작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과 지식을 가진 사람은 수석 감정사인 당신뿐입니다."

임소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완벽하게 설계된 알리바이가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출입 로그와 온습도 그래프가 가리키는 진실은 명백했다. 그녀의 논리적 방어선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복도 구석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울렸다. 강문식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고급 만년필이 들려 있었다. 육중한 체구를 이끌고 다가온 강문식은 차가운 눈빛으로 한도진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관장으로서의 권위가 가득했다.

"한 조사원.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강문식의 목소리는 낮고 느릿했다.

"다들 진정하시고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봅시다. 폭설 때문에 고립된 건 사실이지만, 증거는 고립되지 않습니다? 아니, 경찰이 오기 전에 이런 식의 자의적 판단은 미술관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킬 뿐입니다."

"명예를 논하기엔 시체가 너무 차갑습니다, 강 관장."

한도진은 시선을 강문식에게 고정했다.

"당신이 소지한 마스터키와 서버 포트 #4의 비정상적인 데이터 트래픽을 설명하십시오. 시스템 로그는 관장의 권한으로만 접근 가능한 영역입니다. 임 감정사가 환기를 조작했다면, 그 데이터를 승인하고 은폐한 것은 당신입니다."

"근거 없는 모함입니다."

강문식은 만년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우리 미술관은 최고 수준의 보안을 자랑합니다. 제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는데, 이 참사는 비극일 뿐입니다. 외부 감정사의 억측으로 우리 조직 전체를 매도하려 들지 마십시오. 사건 조사는 내일 경찰이 와서 하면 될 일입니다. 이만 물러서시죠."

강문식의 권위적인 태도는 상황을 덮으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공범 관계를 감추기 위해 관리자의 직위를 방패 삼아 압박을 가했다. 수장고 복도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물리적 증거와 권력 사이의 대치가 이어졌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백연주였다. 신입 조수는 벽에 기대어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그녀의 큰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임소현과 강문식의 시선이 동시에 백연주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 속에는 무언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방관자로 남으라는 압박이었다.

"백 조수."

한도진이 낮게 말했다.

"당신이 수장고 안에서 목격한 푸르스름한 빛과 온도 저하에 대해 다시 증언할 차례입니다. 저들이 숨기려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잖습니까."

"저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백연주는 고개를 저으며 뒷걸음질 쳤다.

"왜 저만 보고 그러세요? 무섭단 말이에요.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을 뿐이에요."

"백 조수,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임소현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다가갔다. 그 목소리에는 명백한 협박이 섞여 있었다.

"불안하신가요? 그건 당신의 직관이 틀렸다는 증거겠죠. 여기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당신 역시 이 사건의 공범으로 몰릴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임소현의 위협적인 태도에 백연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보호받지 못하는 신입 조수의 취약성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문식과 임소현이 자신들을 향한 포위망을 권력과 협박으로 좁혀오려 할수록, 두 사람 사이의 결속이 완벽하지 않다는 모순 또한 드러나고 있었다. 진짜 범인을 감추기 위한 그들의 방어는 역설적으로 서로에 대한 불신을 증명하고 있었다.

한도진은 그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두 용의자의 시선 교환을 정확히 포착했다. 강문식의 눈빛이 임소현을 향해 미세하게 흔들렸고, 임소현의 턱이 경계하듯 굳어졌다. 완벽한 공조는 없다. 이해관계로 묶인 연대는 위기가 닥치는 순간 가장 먼저 무너지는 법이다.

"당신들의 말은 전부 거짓이군요."

한도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근거를 대세요. 임 감정사는 감정실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강 관장은 보안 시스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출입 로그의 타임스탬프와 환기구 댐퍼의 원격 제어 기록은 두 사람이 서로의 알리바이를 보완해 주는 동시에 파괴하고 있습니다. 한쪽이 살인을 설계하고, 다른 한쪽이 시스템을 조작했습니다. 누구의 지시였습니까?"

"헛소리 집어치워!"

강문식이 목소리를 높였다. 육중한 체구가 한도진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한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제가 왜 이 자리를 떠나야 합니까?"

백연주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작았지만, 복도의 공기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모든 시선이 백연주에게로 집중되었다. 백연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나, 그녀의 시선은 임소현과 강문식을 번갈아가며 향하고 있었다. 공포에 질려 있던 신입 조수의 눈빛에 원망과 배신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왜 저만 협박하세요? 어차피... 저 사람들, 우리를 버릴 거예요."

백연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다 들었어요."

임소현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처음으로 크게 흔들렸다.

"뭐라고?"

임소현이 날카롭게 물었다.

"소란 피우지 마, 백 조수!"

강문식이 고함치며 가로막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백연주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진실의 방벽을 무너뜨렸다.

"어제 새벽, 두 분이 감정실 복도 끝에서 나누는 대화를 들었어요. 임 감정사님이 '관장님이 지시한 대로 위작 논란을 덮으려면 이번 일을 사고로 처리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강 관장님은 '증거는 서버에서 지우면 그만이니 신경 쓰지 마라'고 하셨고요!"

복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기록 보관실과 수장고를 잇는 복도에서 오간 은밀한 대화 내용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감정사와 관장,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완벽한 연대의 가식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강문식의 얼굴에서 권위가 사라지고 당황과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임소현은 숨을 멈춘 채 백연주를 노려보았다.

"거짓말이야."

임소현의 목소리에 더 이상 냉소는 없었다. 그건 극도의 불안에서 비롯된 날카로운 비명에 가까웠다.

"저 년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우리 미술관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셈입니다, 한 조사원!"

"거짓말이 아닌 건 당신들의 심장박동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한도진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눈빛은 예리하고 차가웠다.

"데이터가 증명하는 진실은 명백합니다. 임소현, 당신은 환기 시스템으로 수장고 내부 온도를 조작해 시각을 교란했고, 강문식, 당신은 마스터키와 관리자 권한으로 그 모든 알리바이를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로를 의심하며 무너지고 있군요."

용의자들 사이에 극도의 불신이 싹텄다. 임소현은 강문식을 돌아보며 배신당했다는 눈빛을 보냈고, 강문식은 험악한 표정으로 임소현을 외면했다. 완벽하게 설계된 밀실 살인과 은폐 공작은 내부의 균열로 인해 스스로 자멸하고 있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폭설 속의 지하 수장고 복도. 더 이상의 변명은 통용되지 않았다. 진실을 향한 마지막 추격의 발판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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