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발견한 일상의 온도
새벽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강변 산책길을 걸었다. 어깨에 둘러메인 낡은 가죽 카메라 스트랩이 쇄골을 살짝 짓눌러오는 감각이 오히려 기묘한 안심을 주었다. 셔츠 자락을 스치는 봄바람은 여전히 서늘했고, 밤새 이슬을 머금어 부드러워진 자갈과 촉촉한 흙이 뒤섞인 길 위로 나의 운동화 자국이 옅게 퍼져 나갔다. 북한강변의 생태공원이라 불리는 이곳은 새벽의 푸르스름한 공기와 은은한 물안개가 어우러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감각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길은 부드러운 흙과 자갈이 뒤섞여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폭신했고, 바람결에 미세하게 섞인 물냉이 향이 코끝을 알싸하게 스쳤다. 어디선가 이름 모를 물새들의 짹짹거리는 울음소리가 아침의 배경음악처럼 낮게 깔렸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순하고도 절박했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화석처럼 굳어버린 나를 깨우고, 완벽한 사진 한 장을 남겨 내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세상에 증명하고 싶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보정 작업과 마감의 압박에서 벗어나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유가 이 낯선 서울 근교의 작은 마을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늘 똑같던 회색빛 일상도 순식간에 반짝이는 예술이 되곤 했다. 나는 습관처럼 뷰파인더에 눈을 갖다 대며 나만의 엄격한 틀을 되뇌었다. 매 십 분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현재의 시각과 소리, 냄새, 그리고 촉감을 정확하게 기록할 것. 그것이 내 사진이 가질 유일한 정당성이자 강박이었다.
강가를 따라 이어지는 흙길은 약 1.2킬로미터 정도라 했다. 중간중간 작은 나무 다리와 투박한 나무 벤치가 나타났지만, 나는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온통 렌즈 끝에 맺히는 피사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물가에 은은하게 반사되는 아침 햇살의 파문, 물냉이 향이 코끝을 스치는 찰나의 순간을 단 한 순간도 놓칠새라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고 차갑게 끊어지는 건조한 기계음이 고요한 강가의 아침 소리를 가차 없이 잘라냈다. 사진은 메모리 카드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가슴 한구석은 이상할 만큼 허전하고 메말라갔다. 완벽한 구도를 잡기 위해 파인더 속 세상을 조율할수록, 내가 서 있는 이 땅의 실제 온기 대신 유리에 비친 납작한 세상만 눈에 담기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세어두었던 시간에 맞춰 걸음을 멈췄다. 정확히 십 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계 바늘을 확인하고 나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밑에는 이름 모를 들풀들이 돋아나 있었고, 코끝에는 봄의 물냄새가 스쳤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카메라의 다이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감각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를 골몰하는 나 자신이 문득 낯설었다.
기억 속에서나 꺼내 봄직한 근사한 독백 대신, 눈앞의 풍경을 향해 속으로만 나직하게 물음을 삼켰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도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뷰파인더 너머의 풍경은 십자 초점 안에서 소름 끼치도록 선명한데, 정작 내 발밑의 풀잎이 품은 결이나 피부를 스치는 바람의 부드러운 감촉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붙잡으려 한 것은 과연 아름다운 풍경이었을까, 아니면 내 삶이 아직 살아있다는 무용한 증명이었을까.
다시 발걸음을 옮겨 강변을 벗어나자, 햇살이 조금씩 뜨거워지며 작은 장터가 열리는 광장 쪽으로 길이 이어졌다. 주말마다 선다는 그곳은 텐트와 나무 상점들로 제법 활기차고 소란스러웠다. 구수한 떡볶이 국물 냄새와 달콤하게 구워지는 고구마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고,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과 오가는 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웅성거리는 배경음악처럼 장터를 채웠다. 나는 카메라를 가슴에 매단 채 장터 구석을 서성였다.
그때, 투박한 앞치마를 두른 다부진 체격의 상인이 눈에 들어왔다. 웃을 때마다 눈가에 깊게 파이는 주름을 지닌 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잡화상을 운영하는 이였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렌즈를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맞추려 하자, 뷰파인더 너머로 그의 시선이 마주쳐 왔다. 그는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
어서 와요, 이런 길 끝에는 뭐가 보이던가?
나는 셔터를 누르려던 검지 손가락을 멈추고 카메라를 살짝 내렸다. 그는 낯선 여행자를 경계하지도, 그렇다고 상술 섞인 환영을 보이지도 않는 담백한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풍경을 담고 있어요. 완벽한 순간을 찾으려고요.
그는 내 어깨에 걸린 낡은 펜탁스 카메라와, 초점이 다소 흐려진 나의 눈빛을 번갈아 보더니 툭 웃으며 말했다. 웃을 때마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거기 멈춰 서서 사진만 찍지 말고 일단 물 한 잔 마실 겸 앉아 봐. 처음 온 사람들은 다들 급하게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하더라니까. 나도 말이야, 어릴 적엔 서울 도시로 떠나고 싶었어. 밖에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지.
그의 투박한 사투리가 섞인 말은 길지 않았지만, 내 가슴 한복판을 묵직하게 두드렸다.
오늘 본 풍경이 마음속에 남았으면 됐지, 다 그런 거 아니겠소.
그의 말에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였다. 사진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정작 내 발밑의 진짜 삶을 유예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쑥 낯 뜨거움으로 밀려왔다.
장터 안쪽으로 더 걸어가자, 은은한 꽃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화사한 앞치마에 싱그러운 꽃가루를 묻히고 있는 한 상인이 보였다. 꽃집 주인 겸 비건 카페를 운영하는 그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진열대를 정리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밝게 웃어 보였다.
여기 꽃들은 햇살을 먹고 자라서인지 유난히 향기가 깊어요. 사진만 찍으시는 건가요? 꽃이랑 직접 대화도 좀 나눠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봄볕처럼 밝고 에너지가 넘쳤다. 그녀는 내가 카메라를 든 채 어색하게 서 있자, 다가와 손수 내린 따뜻한 허브차 한 잔을 건넸다.
실은 저도 처음 왔을 땐 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매일 울었어요. 도시를 떠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늘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거든요. 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어요. 사진을 찍든, 꽃을 가꾸든 결국 내 마음에 드는 게 중요한데 말이에요.
그녀의 고백은 놀라울 만큼 내 내면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자유는 일상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곳을 찾았을 때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거짓 믿음이, 그녀의 담담한 고백을 통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내 길은 내가 만드는 거니까요, 괜찮아요. 자, 이 차를 마시면 아마 다른 풍경이 보일 거예요.
그녀가 건넨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뜨끈한 온기가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팽팽하게 짓누르던 십 분마다의 강박과 규칙들이 거짓말처럼 흩어져 내렸다. 나는 카메라를 조작하는 손을 멈추고, 찻잔 위로 피어오르는 하얀 김을 바라보았다.
뷰파인더가 아닌, 내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본 세상은 햇살에 찬란하게 반짝이는 풀잎과 이름 모를 들꽃들의 살아있는 숨결로 가득했다. 장터에서 만난 이가 건넨 무심한 위로와, 비건 카페를 운영하는 그녀가 건넨 따뜻한 차 한 잔이 내 안의 조급한 불길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나는 어깨에 걸린 가죽 스트랩을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완벽한 한 장의 사진으로 내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찾아 헤매던 자유는 렌즈 너머의 멀고 아득한 풍경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발 밑을 적시는 흙과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이 소박한 일상의 온도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천천히 깊은숨을 내쉬며 카메라를 가방 속 깊이 넣었다. 지퍼가 닫히는 서걱한 소리가 유독 선명하게 주변의 고요를 채웠다.
나는 더 이상 뷰파인더 뒤에 숨어 세상을 관찰하는 차가운 관찰자가 아니었다. 비로소 이 길 위의 온전한 주인공으로서, 한결 가볍고 단단해진 발걸음을 옮겨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결국 내가 찾아 헤매던 건 이 낯선 길의 끝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 숨 쉬며 돌아갈 나의 삶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