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정각. 거실에서 알람 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현관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야근이라며 늦게 들어왔던 남편 박도현이 현관 정면의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고쳐 매는 소리였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조용히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만 까딱하면 보이는 거실 구석 장식장의 초소형 와이파이 캠 화면으로, 주방 식탁 쪽의 모습이 고화질로 송출되고 있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한수아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도현이 현관을 들어서는 소리에 맞춰, 일부러 슬픈 눈을 하고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완벽한 연극의 시작이었다.
“도현 씨, 어제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사모님을 더 잘 케어했어야 했는데…….”
수아의 목소리가 거실을 넘어 안방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 도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수아 씨가 왜 사과를 합니까. 고생은 혼자서 수아 씨가 다 하는데…….”
도현의 목소리에는 피곤함과 함께 아내를 향한 불신과 짜증이 짙게 배어 있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소리 없이 피식 웃었다. 그래, 조금만 더 해라. 어차피 네 인생도 오늘부로 끝이니까.
어젯밤, 채원과의 통화에서 우리는 이미 모든 동선을 맞춰 두었다. 수아의 신원 조회 결과와 가스라이팅 전과가 담긴 데이터는 채원이 도현의 회사 웹메일 계정으로 발송하기로 했다. 도현이 매일 아침 출근 직후 회사 시스템에 로그인하며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메일함이었다. 도현의 회사 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지난 결혼념일에 함께 가입했던 사내 복지몰 계정과 동일했기에, 내가 채원에게 미리 귀띔해 준 덕분에 접근은 어렵지 않았다. 채원의 그 치밀한 계산 덕분에 타이밍은 완벽했다. 도현이 회사에 도착해 메일 알림을 확인하는 시각과, 내가 그를 마주하는 시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질 터였다.
나는 일부러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눈 밑에는 손가락으로 살짝 문질러 다크서클을 강조한 채 천천히 방문을 걸어 나갔다. 발소리를 의도적으로 질질 끌며,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유진 씨.”
도현이 거실 한복판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아내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 마치 전염병 환자나 잠재적 범죄자를 대하는 듯한 경계와 혐오가 섞여 있었다.
“왜 그렇게 봐……?”
내가 일부러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도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겉옷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툭툭 두드렸다.
“유진 씨. 제발 정신 좀 차려요.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뭐가…….”
“수아 씨가 그러더군요. 어젯밤에 당신이 혼자서 벽을 보고 중얼거리다가, 서아 방 앞에서 아이를 해치기라도 할 것처럼 무섭게 웃고 있었다고.”
수아는 주방 식탁에 앉아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초소형 캠으로 그 교활한 미소가 아주 선명하게 녹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내가? 서아를?”
“그럼 수아 씨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당신, 요즘 진짜 이상해. 밤마다 잠도 안 자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밖을 서성이고…….”
도현은 짜증이 칠 대로 칠해진 목소리로 대기업 가죽 가방을 소파 위에 내던졌다. 그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내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수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남의 말 한마디에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데 단 1초도 망설임이 없는 남자.
“도현 씨, 나 안 미쳤어.”
“안 미친 사람이 이 지경을 만들어? 이 아파트 단지 맘카페에서도 말이 많아요. 사모님이 요즘 산후우울증이 너무 심해서 아이를 방치하고, 시터한테 폭언을 한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당신, 진짜 병원 가야 해.”
도현은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탁자에 탁 소리 나게 내려쳤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명함이었다. 수아가 언제 준비해 두었는지 아주 반듯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오늘 당장 연차 쓰고 병원 다녀와요. 양육권 문제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겠으니까.”
양육권.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거실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내 자식을, 내가 품어 낳은 서아를 이 남자가 내 손에서 빼앗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도현은 내가 울부짖거나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는지,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내 얼굴에는 눈물 한 방울도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도현의 스마트폰이 지독하게 짧은 진동음을 울렸다.
지이잉—.
도현은 귀찮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탁자 위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마 회사 상사나 팀원에게서 온 업무 메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화면을 밀어 잠금을 해제하고 메일함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발신인: 법무법인 로엘 & 신원조회 데이터]
“……이게 뭐야?”
도현이 중얼거리며 메일을 열었다. 화면 위로 이혼 전문 변호사의 상담 내역, 그리고 한수아의 진짜 주민등록등본 초본과 위조 신분증 정황 요약본이 떴다. 거기에는 수아가 과거 다른 가정에서 벌였던 소름 끼치는 가스라이팅 전과와, 이미란이라는 진짜 이름이 적힌 판결문 요약본까지 고스란히 첨부되어 있었다.
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는 메일 내용과 첨부된 공문서의 직인을 번갈아 보며 숨을 헐떡였다. 손끝이 눈에 띄게 파르르 떨렸다.
“이…… 이게 무슨…… 수아 씨, 잠시만요. 이거 뭐야……?”
도현의 목소리가 억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수아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붙였던 자신의 선택이 머릿속에서 거칠게 충돌하는 것을 겪고 있었다. 회사 내 입지가 불안해 가정의 평화를 외부의 완벽한 도움으로 메우려 했던 그였기에, 그 ‘완벽한 조력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 자신의 판단력 전체를 무너뜨리는 붕괴였다.
“박 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모님이 또 이상한 헛소리를 하시는 거 아니에요?”
수아가 태연하게 웃으려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제 막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도현의 코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남자가 덜덜 떨며 들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 쳐서 더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정신과 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네 옆에 앉아 있는 저 여자야, 도현 씨.”
“유진 씨, 이건…… 도대체 뭐야? 이 메일…….”
“그리고 도현 씨.”
나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도 공범이야. 내 자리를 빼앗고 내 아이를 담보로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간 이 가짜 도우미의 훌륭한 협조자.”
도현은 사색이 된 얼굴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듯 쥐었다. 메일에 첨부된 판결문과 신원조회 결과는 너무나 명확했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공문서의 사진들이었다.
“아니, 이건…… 사기야! 사기꾼이야 이 여자!”
도현이 경악하며 수아를 향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배신감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멍청한 짓에 대한 뒤늦은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수아는 더 이상 무해하고 청순한 베이비시터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스으윽.
수아가 식탁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에 걸려 있던 가식적인 미소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냥감을 문 짐승의 기괴하고도 서늘한 광기였다.
“……눈치채는 게 조금 빠르네, 강유진 씨?”
수아가 낮게 웃으며 내뱉었다. 도현은 그 광기 어린 목소리에 뒤로 주저앉을 듯이 비틀거렸다.
나는 거실 장식장 구석의 초소형 캠을 향해 시선을 살짝 던졌다. 이 모든 순간이 단 한 프레임도 빠짐없이 녹화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이미란.”
내가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뱉자, 수아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악에 찬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