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의 손등이 내 손등을 덮었다. 차갑고 미끈거렸다. 인간의 체온이라기보다는 잘 정제된 플라스틱 같은 촉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믿는 얼굴로 내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다행이에요. 사모님은 그냥 푹 쉬시기만 하면 돼요. 집안일도, 서아도 다 제게 맡기시고요.”
“고마워요, 수아 씨. 정말…… 당신이 없었으면 난 어떻게 버텼을지 몰라.”
나는 일부러 초점이 풀린 눈을 연출하며 중얼거렸다. 수아의 입꼬리가 만족감으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내가 완전히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확신한 모양이었다.
“그럼 주무세요. 제가 불 꺼드릴게요.”
수아는 유리컵을 받아 들고 사뿐사뿐 걸어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완벽한 침묵이 방안을 채웠다. 나는 곧바로 침대 머리맡에 세워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귀에 꽂힌 이어폰 너머로 채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 유진아? 저년 방금 나갔어? 목소리 들었어, 미친년 저거 진짜 소시오패스 아니야?
“목소리 낮춰, 채원아. 다 듣고 있지.”
나는 침대에서 소리 없이 내려와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약한 연기를 하던 내 눈동자에는 한 줄기의 물기조차 없었다. 오직 얼어붙은 빙하 같은 냉혹함만이 번뜩이고 있었다.
- 어쩔 거야? 저년이 아주 대놓고 널 환자로 몰아가는데. 남편이라는 도현 그 인간도 곧 넘어올 판이잖아.
“넘어오라고 해. 멍청한 인간들은 직접 대가리를 깨기 전까지는 정신을 못 차리니까.”
외출복이나 홈웨어로 갈아입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지금 걸치고 있는 잠옷 차림 그대로가 오히려 낫다. 환자인 척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나오는 모양새가 자연스러우니까. 나는 주머니가 깊은 파자마 상의 포켓을 확인했다. 그 안에는 채원이 흥신소 루트를 통해 구해다 준 초소형 와이파이 캠 네 대와, 미리 소음 방지용 무소음 양면테이프를 감아둔 정밀 도청기 두 대가 단단히 들어 있었다.
수아가 지금 이 시간에 무엇을 할지는 뻔했다. 주방으로 내려가 싱크대를 정리하며 내가 잠들었는지 귀를 기울이거나, 내일 아침 도현에게 보고할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짜고 있을 터였다. 그녀가 방심하고 가사 노동에 몰두하는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나는 문을 살짝 열고 복실복실한 슬리퍼 소리조차 죽인 채 거실로 나갔다.
거실은 적막했다. 주방 쪽에서 식기류를 마른 행주로 닦아내는 듯한 슥슥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수아는 지금이 기회라 여기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가장 먼저 거실 구석에 세워진 대형 장식장으로 다가갔다. 서아의 장난감 바구니와 인형들이 가득 꽂혀 있는 선반이었다. 그중에서도 서아가 가장 좋아하는, 눈이 커다란 토끼 인형의 등 뒤쪽을 살짝 벌렸다.
지이잉.
인형의 털 안쪽 틈새로 초소형 캠을 깊숙이 밀어 넣었다. 렌즈의 각도는 거실 소파와 현관 복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였다. 기계가 정상 작동한다는 파란색 LED 불빛이 깜빡였다가 이내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완벽했다. 수아의 눈에는 절대 띌 리 없는 위치였다.
- 이야, 순식간에 하나 설치했네? 역시 전직 로펌 조사원 클라스 안 죽었다.
이어폰 너머로 채원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대답 대신 시선을 거실 천장 쪽으로 옮겼다. 에어컨 실내기 위쪽, 그리고 거실 중앙에 매달린 모빌의 황동 장식물.
모빌은 미세한 공기 흐름에도 흔들리기 때문에, 그 중심에 도청기를 달아두면 집 안에서 오가는 모든 대화가 고스란히 녹음된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쇠붙이나 자석을 그대로 갖다 대면 '탁' 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울리기 십상이었다. 주방에서 수아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판국에 그런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둔 무소음 특수 양면테이프를 손가락 끝으로 살짝 벗겨냈다.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모빌의 이음새 안쪽으로 조용히 손을 밀어 넣었다.
스윽, 밀착.
소음은 단 1도 발생하지 않았다. 도청기는 완벽하게 모빌의 사각지대에 숨겨졌다. 달그락, 하는 작은 소리가 날 뻔했지만, 때마침 주방에서 수아가 컵을 개수대에 툭 부딪히는 소리가 그 미세한 공기를 덮어주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다음은 안방과 서재였다. 특히 도현이 자주 앉는 서재의 책상 스탠드 안쪽. 그리고 우리 부부의 침실 화장대 시계 속. 그곳은 수아가 내 정체성을 훔치기 위해 가장 자주 드나드는 장소들이었다. 그녀가 내 화장품을 바르고, 내 옷을 대어보고, 내 다이어리를 뒤적이는 그 짓거리를 고화질과 고음질로 박제해 줄 공간.
“채원아, 데이터 실시간 백업 잘 되고 있지?”
- 걱정 마. 네가 심는 대로 바로 내 서버로 암호화되어서 넘어오고 있으니까. 저년이 뭘 하든 이제 영구 소장이야.
“좋아. 이제 판은 다 짜였어.”
집 안 구석구석에 심어진 다섯 개의 눈과 귀는, 수아가 나를 조여오고 있다고 믿는 그 순간에도 오히려 수아의 목을 죄어오는 올무로 변해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 위쪽을 정돈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였다.
- 유진아! 조심해, 주방 설거지 소리 멈췄어!
채원의 다급한 경고가 이어폰을 때렸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거실 소파 뒤쪽으로 미끄러지듯 숨었다.
스으윽.
주방의 자잘한 소음이 뚝 끊겼다. 이어 수아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 쪽으로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맨발의 부드러운 발소리가 마루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사모님? 주무세요?”
수아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약간의 의심과 경계가 섞인 묘한 톤이었다. 그녀는 내가 제대로 자고 있는지 확인하려는지 안방 문을 열어보는 기척이 났다.
철컥.
- <em>빈방이지? 저년 당황하겠다.</em>
채원의 목소리가 낮게 흘렀다. 나는 소파 뒤에 웅크린 채 숨소리마저 죽였다. 심장박동 소리가 귀를 때렸지만, 내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잠시 후, 안방에서 나온 수아의 발소리가 거실 쪽으로 다가왔다. 내 머리맡 위로 수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소파 등받이 너머로 그녀의 하얀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수아는 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디 갔지? 분명히 이 안에서 잠들었을 텐데…….”
그 목소리에는 그동안의 무해한 도우미가 아닌, 사냥감을 놓친 포식자의 날카로운 짜증이 묻어났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본성이 그 짧은 몇 마디에 그대로 드러났다.
- 쟤 목소리 들었어? 미친, 소름 돋아. 저게 진짜 면상이네.
채원이 이를 갈며 뱉었다. 나는 소파 뒤에 몸을 밀착한 채, 손가락으로 가만히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수아가 거실을 서성이다가 다시 주방 쪽으로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릴 때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채원아.”
- 응, 말해.
“내일 아침, 도현 씨가 회사 가기 전에 타이밍 맞춰서 이혼 전문 변호사 명함 하나랑, 수아 저년 주민등록등본 초본 가짜라는 정황 요약본. 도현 씨 회사 메일로 쏴줘.”
- 오호, 남편 그 인간한테도 이제 고구마 맥이는 거 끝내고 직격탄 날리겠단 거지?
“물론이지.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세우고 양육권까지 빼앗으려던 공범이니까. 그 인간도 같이 지옥 구경 좀 해야지.”
내 지독하게 차분한 목소리에 채원이 잠시 말을 잃었다가, 이내 통쾌하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 알았어. 내일 아침 출근 시간에 정확히 터트려 줄 테니까. 너는 거기서 연기나 완벽하게 해.
“걱정 마. 오스카상이라도 타야 할 판이니까.”
나는 천천히 소파 뒤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피곤에 지친 척하는 초점 없는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눈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 선명했다.
한수아. 아니, 이미란. 네가 내 가정과 내 아이, 그리고 내 자리를 훔치려던 그 모든 수작은, 이제 고스란히 너를 목매달기 위한 올가미가 되어 돌아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도현이 내뱉을 위선적인 대사와 수아가 지을 당황스러운 표정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서 살짝 빼내어 머리카락 뒤로 감추고, 다시 침실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마지막 막이 오르기 전의 고요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