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7화

7화. 가면 뒤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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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켜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배경화면에 띄워둔 두 장의 사진. 위조된 한수아의 주민등록증과, 그 밑에 겹겹이 숨겨져 있던 진짜 운전면허증 속 ‘이미란’이라는 이름.

사진 속 이미란의 눈빛은 서늘했다. 지금 내 앞에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완벽한 시터를 연기하는 한수아의 얼굴과 묘하게 겹쳐지면서도, 훨씬 더 본능적이고 날것의 광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침대 이불을 걷어내고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이미 차가운 이성으로 갈무리된 지 오래였다. 소리를 내지 않고 안방 창가 쪽으로 걸어가 블라인드를 살짝 내렸다.

거실에서는 수아가 서아를 안고 가볍게 콧가를 간지럽히며 재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정다감한 목소리, 아이를 어르는 부드러운 손길. 저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얼굴을 이미 확인한 나로서는 소름이 돋다 못해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이미란.’

이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저 여자가 과거에 어떤 짓을 벌였고, 왜 타인의 신분을 통째로 도려내어 내 가정으로 기어 들어왔는지. 그 전말을 낱낱이 파헤쳐야 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비밀 메신저 앱을 켜고, 방금 확보한 이미란의 운전면허증과 위조 신분증 사진을 채원에게 전송했다.

[유진: 이거 신원 조회 좀 해줘. 이미란, 92년생. 주민번호 앞자리 이거야.]

전송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메신저 창에 ‘읽음’ 표시가 떴다. 채원에게서 곧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거실 쪽의 기척을 살피며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유진아. 이게 뭐야? 어디서 난 거야?

채원의 목소리는 낮고도 급박했다. 디지털 포렌식 업체를 운영하는 녀석조차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여자가 감춰둔 진짜 신분증이야. 서재 캐비닛 안쪽에서 찾아냈어. 그동안 이 가정을 통째로 삼키려고 밑작업을 친 거였어, 채원아.”

  • 미친…… 야, 일단 데이터베이스에 주민번호랑 이름 올려볼게. 여권 정보나 지문은 몰라도 주민등록 등초본 이력은 우회로로 조회해 볼 수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빨리 부탁해.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아니 그 전에 이 여자의 실체를 확실하게 잡아내야겠어.”

  • 알았어. 끊지 말고 대기해.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들릴 거야.

통화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거실에서 수아가 서아를 침대에 눕히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거실 탁자에 물건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수아의 조용한 숨소리가 홈캠 화면을 넘어왔다.

수아는 지금 거실 쇼파에 앉아 다이어리를 펼치고 있었다. 그 다이어리. 내가 없는 사이 내 말투와 행동 습관, 심지어 도현의 취향까지 낱낱이 기록해 두었던 그 혐오스러운 기록장. 화면 속 수아는 다이어리를 넘기며 혼자서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이 집의 진짜 여주인이 된 사람처럼.

  • 유진아! 조회 결과 떴어. 이거 진짜 가관이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채원의 목소리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목소리를 바짝 낮췄다.

“어떻게 됐어? 누군데 저 여자?”

  • 한수아라는 이름은 완전 위조야. 진짜 한수아는 몇 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가서 지금 밴쿠버에 살아. 이 년이 도용한 거지. 그리고 네가 찾은 ‘이미란’이라는 이름…… 이것도 주민등록상 진짜 본명은 아니야. 주민번호 뒷자리 패턴 추적해보니까 과거에 개명 전 이름이 따로 걸려 나오네. ‘한수진’. 92년생.

‘한수진.’

  • 그리고 주민등록 초본상 주소 변동 이력을 좀 더 파봤는데, 이 년 거주했던 지역마다 의문스러운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대단한 전과 기록까지는 일반 포렌식 선에서 바로 안 뜨지만, 과거 기록 중에 지방의 모 대기업 임원 가정에 입주 도우미로 들어갔다가 집안이 아주 풍비박산 난 적이 있더라고. 그때 그 집 엄마가 정신적으로 무너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는 기록이 소송 판결문 데이터에 구석탱이로 박혀 있어.

쿵.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단순히 남의 자리를 탐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이 여자는 멀쩡한 가정을 해체시키고, 진짜 엄마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는 것을 즐기는 소시오패스였다.

“……병원에 실려 갔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 정확한 디테일은 내가 로펌 인맥들이랑 사설 데이터베이스 좀 더 뒤져봐야 확실히 나오겠지만, 정황이 딱 맞아떨어져. 이 년이 입주 시터로 들어가서 서서히 엄마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고, 남편이랑 주변 사람들 눈을 속여서 가정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수법을 예전에도 써먹었던 거야. 유진아, 너 지금 당장 그 집에서 나와야 해! 서아 안고 내 사무실로 와. 당장 경찰에 신고하든 해야지, 그런 미친 년이랑 한 집에 단둘이 있는 건 너무 위험해!

채원의 다급한 외침이 귀를 때렸다. 내 손으로 직접 초소형 캠을 설치하고 판을 짜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상대가 과거에 가정을 작살내고 사람을 정신병원까지 몰아넣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등골이 오싹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이 차가워지며 현실적인 계산이 돌아갔다.

‘지금 여기서 서아를 안고 무작정 도망친다면?’

남편 도현은 이미 수아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나를 예민하고 불안정한 여자로 취급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뚜렷한 법적 증거 없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면, 도현과 수아는 나를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져 아이를 납치해 도망친 엄마’로 둔갑시킬 것이다. 그들은 경찰과 법원을 향해 내 양육권을 박탈해야 한다는 소송을 제기할 테고, 나는 내 손으로 아이를 빼앗기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게다가 지금 집 안 곳곳에 설치해 둔 초소형 캠과 도청기에는 수아가 본색을 드러내며 나를 조작하고 가스라이팅하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실시간으로 녹화되고 있었다. 오늘 밤, 도현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수아는 나를 완전히 정신병자로 몰아갈 작정이었고, 나는 그 판을 역이용해 두 인간의 민낯을 동시에 박살내야 했다.

지금 도망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자멸이었다.

“안 돼, 채원아. 지금 나가면 끝장이야.”

  •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저 여자 정체를 알고도 그 소리가 나와?

“도현 씨가 오늘 야근하고 늦게 들어온다고 했어. 수아 저 년은 오늘 밤을 기점으로 나를 완전히 정신병원에 집어넣거나 집에서 쫓아낼 판을 완성하려고 할 거야. 내가 지금 도망치면, 저 년은 내가 정신이 나가서 도망친 거라고 포장해서 도현 씨를 완전히 세뇌시킬 거고, 나는 서아 양육권까지 통째로 빼앗기게 돼.”

  • ……!

“내가 집을 나가는 게 아니라, 저 년이 이 집에서 두 손발 묶여서 짐을 싸게 만들어야 해. 그러려면 오늘 밤이 고비야. 집 안에 설치한 캠에 저 년이 서아를 방치하거나 나를 모함하는 증거들이 계속 쌓이고 있어. 결정적인 한 방을 먹이려면 오늘 밤 수아가 방심하고 본색을 드러내게 만들어야 한다고.”

  • 미치겠네…… 정말 감당할 수 있겠어? 너 혼자서 그 소시오패스를 상대하다가 진짜로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채원이 이를 갈며 소리쳤지만, 그녀 역시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듯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너 지금 당장 내 말 들어, 채원아. 너는 차를 몰고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와. 내 명의로 된 비상 현관 카드키 챙겨서, 102동 지상 출입구 근처에 대기해 있어.”

  • 뭐야? 나보고 거기 가 있으라고?

“그래. 내가 신호를 주면, 그때 채원 너는 인근 지구대 경찰이랑 사설 포렌식 팀 인력 확보해서 곧바로 올라와 주는 거야. 내가 수아의 위조 신분증이랑 지금까지 모은 홈캠 녹화본, 그리고 도현 씨가 올 때까지의 모든 정황을 실시간으로 넘겨줄 테니까. 그전까지는 내 통화 연결 끊지 말고 계속 이어폰 끼고 내 숨소리 들으면서 대기해.”

  • ……알았어. 미쳐 돌아가는 구만. 진짜 조심해, 유진아. 나 지금 바로 차 몰고 출발한다. 아파트 지하 도착하면 메신저로 신호 보낼게.

“응, 믿는다.”

통화를 유지한 채 이어폰을 머리카락으로 슬며시 가렸다.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공포를 이성과 독기로 눌러 담으며, 나는 거울을 스쳐 지나가며 내 얼굴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불안에 떨던 여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냉혹할 정도로 차가운 복수심만 남은, 전직 로펌 조사원의 날카로운 눈빛이 거울 속에 박혀 있었다.

똑, 똑.

안방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주무세요? 서아가 잠에서 깨서 울어가지고요.”

단정하고, 무해하며, 세상에서 가장 선한 도우미의 목소리. 소름 끼치게 부드러운 그 목소리 뒤로, 진짜 한수진의 광기가 은근하게 묻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숨을 고르고, 조금은 지치고 나약한 목소리를 만들어내며 대답했다.

“……응, 안 자. 들어와, 수아 씨.”

달컥.

방문이 열리고, 수아가 하얗고 무해한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따뜻한 물이 담긴 유리컵이 들려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따뜻한 물 좀 마시고 약이라도 드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요즘 계속 깜박하시고, 정서적으로도 많이 지쳐 보이셔서 제가 다 걱정이 돼요.”

걱정 어린 말투였지만, 그 눈동자 깊은 곳에는 나를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역겨운 우월감이 끈적하게 고여 있었다.

나는 수아가 건네는 유리컵을 받아들고, 일부러 손을 미세하게 떨어 보였다.

“고마워요, 수아 씨…… 요즘 정말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네.”

내 떨리는 손을 보며 수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침대 매트리스 끝에 걸터앉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사모님, 제가 있잖아요. 서아도 제가 제 자식처럼 잘 돌볼 테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도현 팀장님도 사모님 상태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정 힘들면…… 이번 주말에 병원 상담이라도 같이 가보는 건 어때요?”

나를 완전히 미친 여자로 만들어 병원에 처박겠다는 속내가 뻔히 보이는 제안이었다. 나는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손에 쥔 채, 수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어폰 너머로 채원이 숨을 죽이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요…… 수아 씨 말대로, 내가 요즘 좀 많이 이상하네.”

내 말에 수아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그녀는 자신이 완전히 이겼다고 확신한 얼굴로, 내 손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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