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6화

6화. 무능한 엄마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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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나자 차 안에는 서늘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핸들을 쥔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기 직전, 맹수가 느끼는 지독한 희열 때문이었다.

‘이미란.’

32세. 3년 전 분당 타운하우스에서 한 가정을 파탄 내고, 여주인을 자살로 몰고 간 뒤 남편과 재혼한 여자. 그리고 그 남편마저 의문의 사고로 죽이고 거액의 유산을 가로챈 괴물.

그 괴물이 지금 내 집에서 내 딸 서아를 안고, 내 행세를 하며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하하…….”

낮은 실소가 터져 나왔다. 참 우스운 일이다. 그녀는 자신이 아주 완벽한 대본을 쓰고 있다고 착각하겠지. 내가 피폐해져서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틀렸다. 그 대본을 쓴 작가가 삼류라면, 주연 배우인 나는 판을 통째로 뒤흔들 감독이다.

나는 백미러를 보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눈가의 핏기를 지우고, 입꼬리를 억지로 처지게 만들었다. 지치고, 불안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독박 육아에 찌든 무능한 엄마’의 얼굴.

연기는 자신 있었다. 로펌 조사원으로 일하며 수많은 인간들의 거짓과 가면을 봐왔으니까.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나는 호흡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집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번 더 한 뒤, 도어락 번호키를 눌렀다.

띠리링.

문이 열리자마자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내가 아끼는 조 말론 향수. 그리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우리 서아, 엄마보다 수아 이모가 더 좋지? 이모가 우리 서아 제일 사랑해.”

소름이 쫙 돋았다. 수아는 거실 매트 위에서 서아를 품에 안고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은 베이지색 캐시미어 가디건. 내가 지난달에 백화점에서 산, 도현 씨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던 바로 그 옷이었다. 수아의 입술에는 내가 화장대에 두고 온 샤넬 립스틱이 선명하게 발려 있었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수아는 무해하고 청순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목례했다.

“어머, 사모님. 오셨어요?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말투마저 내 억양을 은근히 흉내 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피가 거꾸로 솟아 소리를 질렀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신발을 대충 벗어 던졌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거실 구석을 두리번거렸다.

“어…… 어, 수아 씨. 서아는…… 별일 없었지?”

내 목소리는 작게 떨리고 있었다. 완벽한 피해자의 목소리였다.

수아는 내 초라한 몰골과 떨리는 음성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며, 찰나의 우월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요. 사모님이 나가 계시는 동안 서아 아주 잘 놀았어요. 다만…….”

수아가 말끝을 흐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사모님이 나가시고 나서 서아가 한참 동안 울며 보채더라고요. 아무래도 아침에 사모님이 서아한테 소리 질렀던 것 때문에 깜짝 놀랐나 봐요. 아이 정서에 아주 안 좋은데…… 걱정이에요.”

은근한 가스라이팅. 내가 서아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았는데도, 마치 내가 아동 학대라도 저지른 것처럼 은근슬쩍 죄책감을 심는 화법이었다.

“내가…… 내가 정말 소리를 질렀어? 그냥 조용히 하라고 한 것뿐인데…….”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며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눈으로 수아를 바라보았다.

“수아 씨, 나 요즘 정말 이상해. 자꾸 기억도 깜빡깜빡하고…… 내가 서아한테 무슨 짓을 할까 봐 무서워.”

수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서아를 조심스럽게 범퍼 침대에 눕히고는,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내 손을 잡았다.

“사모님, 힘드신 거 다 알아요. 독박 육아라는 게 원래 그래요.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죠. 대기업 팀장 사모님 소리 들으면서 남들 시선 신경 쓰랴, 완벽하게 아이 키우랴…… 얼마나 지치시겠어요.”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 뱀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제가 있잖아요. 이제 서아는 제게 다 맡기시고, 사모님은 푹 쉬세요. 도현 님…… 아니, 아버님 퇴근하실 때까지 방에서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때요?”

순간 수아의 입에서 나올 뻔한 호칭에 내 신경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도현 씨’라고 부르려다 황급히 고쳐 부른 것 같았다.

벌써부터 이 집안의 안주인이 된 양, 남편을 제 손아귀에 쥐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고마워, 수아 씨. 수아 씨밖에 없어. 나 잠깐만 방에서 누워 있을게.”

나는 비척거리며 안방으로 걸어갔다. 수아는 내 뒷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안방 문을 닫고 들어서자마자, 나는 곧바로 무너진 표정을 싹 지웠다. 눈물을 닦아내고 날카로운 빛을 띤 눈으로 방 안을 응시했다.

‘지금이야.’

도현 씨가 퇴근하기 전, 그리고 수아가 안심하고 거실에서 서아를 돌보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수아의 진짜 정체를 증명할 결정적인 물리적 증거가 필요했다. 채원이 알아낸 사실을 뒷받침할 위조 신분증이나, 그녀의 본명 ‘이미란’이 적힌 물건들.

나는 안방 문짝에 설치해 둔 초소형 무선 카메라의 각도를 확인했다. 거실과 주방, 그리고 복도를 비추는 카메라는 모두 정상 작동 중이었다. 내 스마트폰 화면으로 수아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화면 속 수아는 서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주 평온한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은근히 안방 문 쪽을 향해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드레스룸 안쪽으로 향했다. 수아는 입주 도우미로 들어온 이후, 서재 구석의 잠금장치가 달린 철제 캐비닛을 자신의 개인 보관함으로 써왔다. 평소에는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만, 오늘 아침 급하게 청소를 하다가 캐비닛 서랍 하단 키를 거실 매트 밑에 흘려둔 것을 내가 홈캠으로 이미 확인해 둔 터였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 속 수아의 동선을 주시했다. 수아가 서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베란다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였다.

나는 소리 없이 안방 문을 열고 서재로 이동했다. 철제 캐비닛 아래를 더듬자, 차가운 열쇠가 잡혔다. 손을 떨지 않고 단번에 자물쇠를 돌렸다.

달컥.

서랍이 열리자, 그 안에는 수아가 평소 쓰던 다이어리와 함께 검은색 가죽 파우치가 들어 있었다. 파우치 지퍼를 열자 자물쇠가 달린 미니 금고 열쇠와 함께, 이중으로 밀봉된 비닐 파일이 나왔다.

그 안을 펼치자마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한수아. 98xxxx-2xxxxxx.’

주민등록증 위의 사진은 지금의 수아 얼굴이 맞았지만, 신원 조회 결과 캐나다로 이민 갔다던 진짜 한수아의 인적 사항과 수아의 얼굴을 교묘하게 합성해 만든 위조 주민등록증이었다.

그리고 그 뒷장. 비닐 파일 가장 깊숙한 곳에서 진짜 지문과 얼굴이 담긴 운전면허증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란. 92xxxx-2xxxxxx.’

화장기가 거의 없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서늘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30대 여성 사진. 그리고 그 밑에 선명하게 적힌 진짜 이름, 이미란.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꺼내 위조 주민등록증과 진짜 운전면허증의 앞뒷면을 단 3초 만에 고화질로 담아냈다. 원래 있던 자리에 파일과 파우치를 정확히 밀어 넣고, 캐비닛을 잠근 뒤 열쇠를 제자리에 던져두었다.

그 순간, 거실 쪽에서 서아의 웃음소리와 함께 수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주무세요?]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타고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탁, 탁, 탁.

나는 재빨리 안방 침대 위로 뛰어올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수아의 그림자가 침대 위로 드리워졌다.

“사모님, 많이 피곤하신가 보네.”

수아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이내 문을 닫고 멀어졌다.

이불 속에서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그 안에는 이미란의 진짜 면허증과 위조 신분증 사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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