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5화

5화. 거울 속의 타인

· 16 min read

쾅.

굳게 닫힌 방문 너머로 거실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어두컴컴한 안방 침대에 주저앉은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까지 분노로 파르르 떨리던 손끝이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을 가볍게 탭하자, 거실과 주방에 설치된 초소형 무선 카메라의 실시간 피드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화면 속에서 도현은 여전히 훌쩍이는 수아의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수아 씨, 미안해요. 우리 아내가 요즘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해서 그래요.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닌데…….”

“아니에요, 박 팀장님. 제가 눈치가 없어서 사모님 심기를 거스른 건데요, 뭐.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수아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가련하게 고개를 숙였다.

도현이 정수기 물을 떠다 주기 위해 등을 돌린 바로 그 순간.

수아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물을 흘리던 눈망울은 간데없고, 입꼬리가 기괴할 정도로 길게 찢어지며 조소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정확히 내가 숨겨둔 초소형 카메라가 있는 벽면 액자를 향해 있었다. 마치 그 너머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하.”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소름이 돋기보다는 오히려 머릿속이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차갑고 투명해졌다.

전직 로펌 조사원.

그 타이틀은 고스란히 내 뼈와 살에 새겨진 본능이었다. 수많은 사기꾼과 불륜남녀, 대기업 산업 스파이들을 추적하며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었다.

‘상대가 가장 방심하고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이, 가장 완벽한 덫을 놓을 기회다.’

한수아. 너는 나를 미친년으로 만들어서 이 집에서 쫓아낼 생각이지?

그리고 내 딸 서아의 엄마 자리를, 도현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고 싶겠지.

좋아. 기꺼이 그 각본에 맞춰 놀아주마.

하지만 마지막에 무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건, 네가 될 거야.

나는 곧바로 침대 머리맡에 숨겨둔 낡은 메모장과 펜을 꺼냈다. 그리고 수아의 행동 패턴과 도현의 심리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아의 알레르기 물질인 ‘땅콩’을 이용한 도발. 내가 가스레인지 불을 켜두었다는 식의 교묘한 기억 왜곡 유도. 그리고 도현에게 은밀하게 흘리는 나의 ‘정신적 붕괴’에 대한 단서들.

철저하고 치밀한 가스라이팅의 정석이었다. 일반적인 주부였다면 이미 스스로를 의심하며 미쳐버렸을 터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스마트폰을 들어 단축키 1번을 눌렀다.

신호음이 채 세 번을 가기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어, 유진아! 무슨 일 있어?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화려한 숏컷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내 대학 동창이자, 현재 디지털 흥신소 및 데이터 복구 업체를 운영하는 윤채원이었다.

“채원아.”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지? 그 시터라는 여자 때문에 그래?]

“응. 그 여자에 대해 알아봐 줘야겠어. 아주 깊은 곳까지 전부 다.”

내 차분하고 건조한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채원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내 성격을 잘 아는 그녀는 이 목소리가 내가 극도로 분노했을 때 나오는 ‘사냥꾼 모드’라는 것을 직감했을 터였다.

[드디어 시작하는구나. 뭘 알아봐 줄까?]

“이름은 한수아. 26세. 우리 집에 제출한 이력서랑 자격증 사본은 내가 메일로 보낼게. 주민등록번호랑 학력, 전 직장 경력까지 전부 다 진짜인지 위조인지 교차 검증해 줘. 그리고 가능하면 그녀가 거쳐 갔던 이전 고용주들의 행방도 알아봐 줬으면 해.”

[이전 고용주들? 단순한 시터 검증이 아닌 것 같네.]

“느낌이 안 좋아. 내 옷을 훔쳐 입고, 내 향수를 쓰고, 내 말투를 연습해. 이건 단순한 동경이 아니야. 내 정체성을 훔치려는 괴물이야.”

[……미친년이네. 알았어. 내 인맥이랑 장비 총동원해서 먼지 한 털까지 털어줄게. 결과 나오는 대로 연락한다.]

“고마워. 참, 도현 씨한테는 절대 비밀이야.”

[당연하지. 그 우유부단한 인간한테 말해봤자 초칠 게 뻔한데. 몸조심하고 있어.]

전화를 끊고 나니 가슴속의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구원자라는 가면을 쓴 괴물이 내 집에 기어들어 왔다. 그렇다면 나는 그 괴물을 가둘 가장 튼튼한 우리를 만들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부러 눈 밑에 짙은 음영을 깔고, 머리를 부스스하게 흐트러뜨린 채 방에서 나왔다. 극심한 두통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불안정한 아내’의 완벽한 모습이었다.

식탁에는 이미 정갈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어머,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수아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내 팔을 부축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피부에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힘없이 비틀거리며 그녀의 부축을 받아들였다.

“……고마워요, 수아 씨. 머리가 너무 깨질 것처럼 아파서…….”

“도현 씨는요?”

“박 팀장님은 사모님이 걱정되셨는지, 아침 일찍 출근하시면서 병원 예약 좀 알아봐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사모님, 정말 병원에 한번 가보시는 게 어때요? 요즘 너무 힘들어 보이셔서 저도 마음이 아파요.”

수아의 눈빛에 언뜻 스치는 승리감.

그녀는 내가 완전히 자신의 통제 아래 들어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요…… 아무래도 정신과에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약이라도 처방받아야지, 이러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나는 일부러 손을 파르르 떨며 물컵을 쥐었다. 물방울이 식탁 위로 튀자, 수아는 얼른 휴지를 가져와 닦아내며 생긋 웃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사모님. 오늘 오후에 서아랑 집에 있을 테니까, 마음 편히 다녀오세요. 주말에 도현 씨랑 가기 전에 미리 상담받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수아 씨. 정말…… 수아 씨 없었으면 난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

나는 수아의 손을 꼭 잡았다.

수아의 입꼬리가 만족감으로 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완벽한 안주인인 자신이, 쓸모없고 미쳐가는 진짜 여주인을 자비롭게 돌봐주고 있다는 그 우월한 감각을.

오후 2시.

나는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서아야, 엄마 다녀올게.”

안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서아는 내 목소리에도 힐끗 눈길만 줄 뿐, 수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응, 엄마 빠빠이.”

서아의 낯선 태도에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슬픈 표정으로 돌아섰다. 서아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참아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나는 내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시동을 걸지 않았다.

대신 조수석 서랍에서 챙겨온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비상계단을 통해 다시 우리 집이 있는 12층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 나는 수아에게 병원 상담을 핑계로 최소 세 시간은 자리를 비울 것이라 말했다.

방심한 쥐새끼는 반드시 둥지 밖으로 기어 나와 본색을 드러내는 법이다.

비밀번호 키의 소리 설정은 이미 무음으로 변경해 둔 상태였다.

삑, 삑, 삑, 삑.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도어록을 조심스럽게 열고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미세하게 문을 닫았다.

집 안은 기묘할 정도로 고요했다.

서아는 낮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박, 사박.

조심스럽게 거실을 지나 안방 쪽으로 향했다.

안방 문은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그리고 안방 안쪽에 딸린 드레스룸에서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스윽.

나는 숨을 죽이고 문틈 사이로 드레스룸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은 시각적 충격이 전해졌다.

그곳에는 한수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가 가장 아끼는, 결혼기념일에 도현에게 선물 받았던 베이지색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하반신에는 내 샤넬 슬랙스가 걸쳐져 있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수아는 내 화장대 위에 놓인 샤넬 립스틱을 들어 제 입술에 꼼꼼히 바르고 있었다. 내가 중요한 미팅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 갈 때만 바르는, 다소 톤 다운된 붉은색 립스틱이었다.

화장을 마친 수아가 거울을 보며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도현 씨,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요? 소고기 전골 어때요? 당신 좋아하는 거잖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말투, 억양, 끝음을 살짝 올리는 특유의 습관까지. 완벽하게 나를 복사해 낸 목소리였다.

수아는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화장대 보석함에 있던 내 결혼반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약지에 끼웠다.

“어머, 딱 맞네.”

수아는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아이처럼 베시시 웃었다.

“서아야, 엄마한테 와야지. 이리 온, 우리 예쁜 딸.”

내 목소리로 서아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의 눈빛은, 집착과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단순히 나를 쫓아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스스로가 ‘강유진’이 되어 이 집의 진짜 여주인이 되려는 것이었다.

미친 괴물.

분노로 눈앞이 아득해졌지만, 내 손은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무음 카메라로 그 모든 광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서 내 옷을 입고, 내 말투를 연습하고, 내 결혼반지를 끼며 희열에 찬 미소를 짓는 한수아의 민낯이 렌즈 프레임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것은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그때, 수아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강유진, 불쌍한 년. 정서불안에 아동 방임까지…… 곧 정신병원에 처박히겠네. 걱정 마, 네 자리는 내가 완벽하게 채워줄 테니까.”

그녀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나는 조용히 폰을 내리고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었다. 먹잇감이 덫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왔음을 확인했으니까.

나는 들어올 때처럼 소리 없이 집을 빠져나왔다.

다시 지하 주차장 내 차 안.

마스크와 모자를 벗어 던진 나는 운전대에 머리를 기대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온몸이 떨렸지만, 그 떨림의 정체는 공포가 아니었다.

드디어 사냥감을 사정거리 안에 두었다는 지독한 희열이었다.

그때, 조수석에 던져둔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는 ‘윤채원’ 세 글자가 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채원아.”

[유진아! 너 지금 어디야? 집 아니지?]

채원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극도로 격앙되어 있었고, 미세한 공포마저 서려 있었다.

“어, 집 밖이야. 왜 그래?”

[방금 네가 보낸 그 한수아라는 여자 이력서랑 신원 조회 결과 나왔어. 이거 진짜 미친 상황이야. 너 당장 그 집에서 나와야 해!]

“무슨 소리야? 천천히 말해봐.”

내 차분한 목소리에 채원이 침을 크게 삼키며 서류를 넘기는 소리를 냈다.

[한수아, 그거 가짜 이름이야. 진짜 한수아는 지금 캐나다에 이민 가서 살고 있어. 네 집에 있는 년은 신분을 철저하게 위조한 도용범이야.]

“신분 위조…… 역시 그랬군. 진짜 이름은 알아냈어?”

[이름은 이미란. 26세가 아니라 32세야. 근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 이 여자, 3년 전 분당의 한 고급 타운하우스에서 입주 도우미로 일했었어.]

내 눈빛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거기서슨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 집 사모님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가 안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남편을 의심하고 아이를 학대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살한 거래. 근데 이상한 건…….]

채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사모님이 자살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시터가 내 옷을 입고 내 행세를 한다’, ‘가족들이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는 말을 남겼대. 그리고 사모님이 죽고 딱 6개월 뒤에, 그 남편이 이미란이랑 재혼했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완벽한 기시감.

그 이미란이라는 괴물은 지금 3년 전 분당에서 썼던 그 악마 같은 시나리오를 그대로 우리 집에 복사해서 붙여넣고 있는 중이었다.

[더 소름 끼치는 건 뭔지 알아? 재혼하고 1년 뒤에 남편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했어. 이미란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뒤에 종적을 감췄고. 유진아, 그년은 그냥 도둑이 아니야. 한 가정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파멸시키는 연쇄 살인마나 다름없다고!]

수화기 너머로 채원의 다급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내 입가에는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이미란. 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의 진짜 민낯.

그녀는 돈과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고 목숨까지 빼앗는 기생충이었다.

“유진아? 내 말 듣고 있어? 당장 경찰에 신고하고 그 집에서 나와!”

“아니, 채원아.”

나는 가죽 시트를 깊게 받쳐 기대며 속삭였다.

“신고는 안 해. 아직은.”

[뭐? 미쳤어? 그 여자가 네 목숨을 노릴지도 모른다고!]

“내 경력을 잊었어? 난 이런 쓰레기들을 전문으로 쫓던 사람이야. 경찰에 넘기는 건 너무 쉬워. 게다가 지금 신고하면 도현 씨는 그 여자의 연기에 속아 오히려 나를 더 미친 사람으로 몰아세우겠지.”

나는 스마트폰 화면 속, 드레스룸에서 찍힌 이미란의 기괴한 미소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년이 짜놓은 판 위에서, 가장 화려하게 무대를 무너뜨려 줄 거야. 제 발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기어 들어가게 만들 테니까.”

[유진아…….]

“채원아, 분당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 연락처랑 당시 경찰 조사 기록, 그리고 이미란의 진짜 금융 거래 내역까지 전부 다 긁어모아 줘.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

내 목소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오히려 깊은 심연에서 끓어오르는 차가운 투지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기대해, 이미란. 네가 준비한 연극의 결말이 어떻게 바뀔지.”

Relat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