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2화

2화. 이상한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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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끝까지 막혀왔다.

나는 소리를 죽인 채 뒷걸음질 쳤다.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는 촉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전신이 경직되어 있었다.

침실 문을 닫고 들어온 뒤에야 비로소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하아, 하아……."

심장이 갈비뼈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날뛰었다.

단순히 나를 좋아하는 시터의 일탈이 아니었다. 거울을 보며 내 목소리와 표정을 연습하던 그 눈빛. 그것은 타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명백한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의 집착이었다.

'당장 쫓아내야 해.'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요란하게 울렸다. 당장 문을 열고 나가 그 여자의 목덜미를 잡고 이 집에서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분노를 누르고 올려왔다.

전직 로펌 조사원으로 일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경험이 뇌리를 스쳤다.

증거가 없었다.

지금 나가서 추궁해 봤자 한수아는 그저 '사모님 가디건이 예뻐서 잠깐 대봤다', '목소리를 따라 한 적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 게 분명했다. 오히려 잠투정으로 예민해진 내 환각이라며 나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갈 수도 있었다.

'냉정해져야 해, 강유진.'

나는 손가락을 떨며 침대 협탁 서랍을 열었다. 낡은 메모장과 펜을 꺼냈다.

[05:12 - 한수아, 본인의 화장대에서 본인 소유의 립밤 및 캐시미어 가디건 무단 사용. 본인의 말투와 억양을 모방하는 행위 목격.]

날짜와 시간을 상세히 기록했다.

피해자처럼 굴며 당황하는 순간 판은 상대에게 넘어간다. 상대를 완벽하게 매장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물증과 단단한 덫이 필요했다.

나는 메모장을 깊숙한 서랍 밑바닥에 숨기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새벽의 그 섬뜩한 잔상이 잔상처럼 남아 단 한 순간도 잠들 수 없었다.

아침 7시 반.

거울 앞에 선 나는 일부러 푸석한 얼굴을 그대로 두었다. 눈 밑의 짙은 다크서클과 피로에 지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철저하게 '독박 육아로 제정신이 아닌 무능한 엄마'를 연기해야 했다.

침실 문을 열고 나오자, 주방에서 고소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왔다.

"어머, 사모님. 벌써 깨셨어요?"

수아가 식탁 위에 깔끔하게 차려진 반찬락을 놓으며 밝게 인사했다.

그녀의 착장에는 어제의 그 캐시미어 가디건이 없었다. 단정한 단색 셔츠에 슬랙스 차림. 완벽하고 무해한 입주 도우미의 모습 그대로였다.

"더 드시지 그러셨어요. 오늘 새벽에 서아가 잠깐 깼는데, 제가 분유 먹이고 바로 재웠거든요."

"아…… 그랬군요. 수아 씨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잘 잤어요."

나는 일부러 머리를 지압하며 얼띤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가 너무 정신없이 자느라 몰랐네요. 고마워요, 수아 씨."

"별말씀을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수아가 생긋 웃으며 내 앞으로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을 내밀었다.

그 순간, 수아가 움직일 때마다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내 코끝을 스쳤다.

'……!'

스모키하면서도 달콤한 우디 향.

내가 결혼 전부터 수소문해서 쓰던,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딥티크의 니치 향수 브랜드였다.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수아에게서는 무향의 바디로션 냄새만 났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매일 외출할 때마다 뿌리는 그 향수의 잔향이 수아의 몸에서 짙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찻잔을 든 손에 힘을 주어 덜덜 떨리는 것을 숨겼다.

"수아 씨."

"네, 사모님?"

"향수가 참 좋네요. 어디 제품이에요?"

무심한 척 던진 질문에 수아의 눈동자가 아주 찰나 동안 기묘하게 빛났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 이거요? 사모님 드레스룸 지나갈 때마다 너무 좋은 향이 나길래…… 어제 퇴근길에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따라 샀어요."

수아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조아렸다.

"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사모님이 워낙 센스가 좋으셔서 저도 모르게 그만……."

말투와 눈빛, 그리고 미세하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각도.

어제 새벽, 거울을 보며 연습하던 그 자세였다.

소름이 등줄기를 따라 쫙 돋아났다. 나의 취향, 나의 습관, 나의 억양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었다.

"아니에요. 나쁜 건 아닌데…… 그냥 취향이 비슷해서 반가워서요."

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그렇죠? 저도 사모님이랑 취향이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꼭 언니 같기도 하고요."

수아의 입에서 나온 '언니'라는 단어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솟구쳤다.

그때, 안방 문이 열리며 남편 도현이 하품을 하며 걸어 나왔다.

"아, 잘 잤다. 유진아, 오늘 아침 뭐야?"

도현은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탄성을 내질렀다.

"와, 수아 씨 진짜 대단하네. 아침부터 이렇게 완벽하게 차려놓고."

"팀장님도 진지 드세요. 사모님이 요즘 육아 때문에 많이 지쳐 보이셔서 따뜻한 한식으로 준비했어요."

수아가 도현을 향해 싹싹하게 웃어 보였다. 도현은 기분이 좋은지 수아를 향해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당신은 좋겠다. 수아 씨 같은 복덩이가 들어와서. 이제 숨 좀 쉬겠네? 표정도 좀 풀어. 왜 그렇게 굳어 있어?"

도현의 철없는 소리에 이빨이 다 가려울 지경이었다. 자신의 아내가 다른 여자에게 삶을 침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 한심한 남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게. 아주 복이 넝쿨째 굴러왔네."

나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오후 2시.

수아가 서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아파트 단지 내 산책을 나간 시간이었다.

"사모님, 서아 햇빛 좀 쬐이고 올게요. 한 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네, 다녀오세요."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느긋했던 태도를 싹 버리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수아가 머무는 건너편 손님방으로 향했다.

입주 도우미로 들어온 지 겨우 사흘째. 수아의 사적인 공간을 뒤지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방 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위생 장갑을 끼고 수아의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걸려 있는 옷들을 본 순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뭐야?"

옷장 안에는 온통 고급 브랜드의 쇼핑백과 새 옷들이 걸려 있었다.

타임, 구호, 르베이지.

모두 내가 주로 즐겨 입는 30대 여성 브랜드들이었다. 게다가 색상마저 내가 선호하는 무채색과 톤 다운된 베이지, 남색 계열 일색이었다.

쇼핑백 안의 영수증을 확인했다. 결제 날짜는 불과 어제와 그저께.

이 여자는 나를 관찰하고, 내가 입는 옷과 브랜드, 심지어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복제하여 사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책상 위를 훑었다. 수아가 사용하는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다이어리를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던 내 눈이 어느 한 대목에서 멈춰 섰다. 빽빽하게 적힌 글씨들. 그것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었다.

[강유진 사모님 분석]

  • 사용하는 향수: 딥티크 탐다오.
  • 자주 쓰는 말버릇: '아, 정말요?', '~인 것 같아요.' (말끝을 흐리는 억양).
  • 서아를 달랠 때: 오른쪽 어깨를 살짝 낮추고 템포를 천천히 가져감.
  • 남편(박도현)이 좋아하는 스타일: 정갈한 단발, 자극적이지 않은 한식, 조용히 경청해 주는 태도.

전신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이 여자는 미쳤다.

나라는 사람을 연구하고 있었다. 내 역할, 내 위치, 내 남편의 취향까지 철저하게 데이터화해서 자신에게 이식하고 있는 중이었다.

계산된 모방. 완벽한 타깃팅.

'이건 단순한 질투나 부러움이 아니야.'

그때, 다이어리 맨 뒷장의 포켓에서 접혀 있는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집어 들어 펼쳤다.

그것은 인터넷 뉴스 기사를 프린트한 출력물이었다. 3년 전 기사였다.

[OO동 고급 빌라 일가족 비극…… 아내, 극심한 우울증 끝에 자살 시도] [입주 시터의 증언: "사모님이 평소에 아이를 학대하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기사 속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그 기사 하단에 수아가 손글씨로 적어놓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첫 번째 성공. 다음은 강유진.]

차가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괴물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이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이전 가정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엄마를 정신병자로 몰아 파멸시키고, 그 자리를 탐했던 것이다.

달칵.

그때, 현관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조용한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사모님~ 저 왔어요! 서아가 밖에서 놀다 졸린지 잠들었네요."

수아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 수아의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손님방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다이어리를 원래 위치에 놓고, 출력물 기사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위생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은 뒤, 옷장 문을 닫았다.

수아가 손님방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수아의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수건을 접고 있는 모양새를 취했다.

"어머, 사모님? 여기서 뭐 하세요?"

수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변했다. 서아를 안은 채 문가에 선 그녀의 표정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나는 일부러 당황한 척, 눈을 굴리며 손을 떨었다.

"아, 수아 씨……! 저, 그게 아니라…… 서아 가제 손수건이 모자란 것 같아서, 수아 씨 방에 여분이 있나 하고 들어왔다가……."

일부러 횡설수설하며 수아의 눈을 피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해 불안해하는 무능한 엄마의 모습을 철저히 연기했다.

수아의 날카롭던 눈빛이 순간 풀어졌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우월감이 그녀의 눈가에 스쳤다.

"아, 그러셨어요? 손수건은 거실 서랍장에 다 모아뒀는데…… 사모님이 요즘 자꾸 깜빡깜빡하시네요."

수아가 서아를 안아 올리며 은근한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육아 피로가 심하시면 건망증도 오고, 정신도 환해진대요. 많이 힘드시죠? 정 불안하시면 병원 가서 약이라도 처방받아 드세요. 서아는 제가 완벽하게 케어할 테니까요."

나를 은근히 '정신병자'로 몰아가는 교묘한 가스라이팅.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이 글썽이는 척, 서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수아 씨…… 내가 요새 진짜 어떻게 됐나 봐요……."

"괜찮아요, 사모님. 제 앞에서는 참지 않으셔도 돼요."

수아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그 손길이 마치 불에 딴 듯 불쾌했지만, 나는 꾹 참아냈다.

수아가 서아를 재우러 안방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주방으로 걸어 나왔다.

내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눈가에 고였던 눈물은 오간 데 없이 사라지고, 전직 로펌 조사원의 서늘하고 냉혹한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 한수아. 네가 원하는 대로 속아줄게.'

네가 나를 완벽하게 모방하고, 내 자리를 빼앗았다고 믿는 그 순간.

가장 높은 곳에서 너를 바닥으로 쳐박아주마.

나는 핸드폰을 꺼내, 로펌 시절 친하게 지냈던 디지털 흥신소 대표이자 친구인 채원의 번호를 눌렀다.

[어, 유진아. 웬일이야?]

"채원아. 사람 하나 조사해야겠어."

나는 창문에 비친 내 냉소적인 얼굴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위조 신분증 쓰는 소시오패스야. 아주 탈탈 털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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