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잠을 자지 못하면 가장 먼저 망가지는 건 이성이 아니라 감각이다.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귓구멍 안으로 쇠꼬챙이를 찔러 넣는 것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새벽 네 시 십이 분. 서아는 세 시간째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었다.
목청을 찢으며 우는 아이를 품에 안고 거실을 수십 바퀴째 돌았다. 무릎 연골이 삐걱거리며 갈려 나가는 느낌이 생생했다. 티셔츠 앞섶은 토사물과 굳어버린 침, 그리고 내 식은땀으로 눅진하게 젖어 살갗에 척 들러붙어 있었다.
"서아야, 제발…… 엄마 숨 좀 쉬자. 응? 제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목소리는 이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쉰 바람 소리만 샜다.
손목 건초염 때문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분유병을 물려 보았지만, 서아는 작은 손을 휘두르며 젖병을 내동댕이쳤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뽀얀 액체가 아이보리색 거실 카펫 위로 사방으로 튀었다.
저 카펫을 빨아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 순간,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쿵, 하고 주저앉았다. 바닥에 엉덩이를 찧는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품 안의 아이는 여전히 핏대를 세우며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안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제 회식이라며 자정이 넘어 들어온 남편 도현은 문을 닫으며 분명 이렇게 말했다.
— 유진아, 나 내일 본부장님 주재 회의 있는 거 알지? 서아 소리 안방까지 안 넘어오게 좀 해 줘. 나 진짜 잠 못 자면 내일 큰일 나.
그의 머릿속에 있는 '내일'에는 자신의 회사 생활만 있었지,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피고름을 짜내며 아이를 받아내야 하는 내 내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출산 전, 나는 국내 굴지의 대형 로펌에서 가장 실적 좋은 선임 조사원이었다.
수천 장의 금융 계좌 내역 속에서 단 하나의 차명 계좌를 찾아내고, 교묘하게 위장된 사기꾼들의 미세한 안면 근육 떨림만으로도 거짓을 간파하던 날카로운 인간이었다.
하지만 임신과 동시에 찾아온 극심한 입덧, 그리고 태어난 직후부터 예민함의 극치를 달리는 아이의 독박 육아는 나라는 사람의 뼈마디를 하나씩 부러뜨려 놓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기 짝이 없었다. 퀭하게 파인 눈두덩, 푸석하게 갈라진 피부, 듬성듬성 빠진 앞머리.
로펌에서 날카롭게 사건을 브리핑하던 서른한 살의 강유진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젖내와 오물 냄새에 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유령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으아아앙-!"
서아의 울음소리가 귓전을 찢었다.
순간,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젖병을 들어 벽에 던져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충동에 질려 내 손으로 내 뺨을 세게 내리쳤다.
짝-!
얼얼한 통증이 번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러다 내가 미쳐서 아이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뼈를 시리게 파고들었다. 나는 한계였다. 벼랑 끝에서 발가락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형국이었다.
‘도우미를 써야 해. 이대로는 내가 죽거나, 아이가 다쳐.’
그날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도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듯 입주 베이비시터를 들이겠다고 선언했다. 도현은 귀찮다는 듯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아서 해. 대신 검증된 사람으로 구해. 이상한 사람 들여서 집안 시끄럽게 만들지 말고.
도현이 나간 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프리미엄 육아 플랫폼과 입주 시터 전문 에이전시에 전화를 돌렸다. 하지만 신도시 최고급 아파트 단지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까다롭고 예민하기로 소문난 3세 아이의 입주 시터를 선뜻 맡겠다는 사람은 드물었다. 오더라도 며칠 만에 고개를 내저으며 나가기 일쑤였다.
희망이 꺼져가던 그날 오후 세 시,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복도의 서늘한 공기와 함께 은은한 라벤더 향이 먼저 훅 끼쳐왔다.
"안녕하세요. 강유진 어머님 맞으시죠? 에이전시 통해서 연락받고 왔습니다. 한수아라고 해요."
문을 연 순간, 나는 멍하니 서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문앞에 서 있는 여자는 내가 상상했던 전형적인 중년의 도우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십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화장기 없는 투명한 피부에 잡티 하나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긴 생머리.
아이보리색의 캐시미어 니트에 베이지색 슬랙스를 매치한 차림새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손톱은 바짝 깎여 있었고, 그 어떤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손목은 깨끗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눈빛이었다.
피로와 짜증에 찌든 나를 훑어보는 흔한 기색 하나 없이, 그저 온화하고 깊은 연민과 존중이 담긴 부드러운 눈빛.
"아, 네…… 들어오세요."
내가 허둥대며 슬리퍼를 내어주자, 한수아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서아의 장난감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고, 싱크대에는 아침에 먹은 그릇들이 쌓여 있었다. 부끄러움에 귓가가 달아올라 변명을 늘어놓으려던 찰나였다.
"어머님, 많이 지치셨겠어요. 아이 키우는 집이 이런 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요."
수아는 내 부끄러움을 꿰뚫어 본 듯,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내 마음을 감싸 안았다.
"서아가 낯가림도 심하고, 잠투정이 워낙 심해서요…… 그동안 오셨던 분들도 며칠 못 버티셨어요."
"아이들이 예민한 건 그만큼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느끼고 똑똑하다는 증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이들 심리 발달 자격증도 있고, 이전 댁에서도 신생아 때부터 세 살까지 전담해서 돌봤거든요."
수아는 가방에서 단정하게 정리된 클리어 파일을 꺼내 내밀었다.
보육교사 1급 자격증, 유아 심리 상담사 수료증, 최근에 발급받은 건강진단서와 신원보증서, 심지어 범죄경력조회 회신서까지. 단 하나의 빈틈도 없이 완벽하게 구비된 서류들이었다. 전직 로펌 조사원인 내 까다로운 눈으로 보아도 흠잡을 데가 전혀 없었다.
그때, 낮잠에서 깬 서아가 안방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나왔다. 눈 주위가 벌겋게 부어오른 아이는 거실에 낯선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입술을 삐죽거렸다.
"흐아앙…… 엄마아……."
내가 아이를 안아 올리려 다가가자, 수아가 부드럽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머님, 잠깐만요. 제게 맡겨보시겠어요?"
수아는 서아의 눈높이에 맞춰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이를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품에서 작은 원목 딸랑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아주 작고 일정한 박자로 딸랑이를 흔들며, 콧노래처럼 낮게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안녕, 서아야? 예쁜 서아구나. 낮잠 자고 일어났는데 목이 말랐지?"
서아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낯선 사람만 보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지르며 내 등 뒤로 숨던 아이였다. 시어머니가 안아주려 해도 질겁을 하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치고는 수아의 손에 들린 원목 딸랑이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수아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이가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고, 서아가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을 내딛자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렸다. 그 손길에는 아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가의 여유와 온기가 가득 배어 있었다.
"서아 착하네. 우리 시원한 보리차 한 잔 마실까?"
서아가 수아의 품에 얌전히 안겨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의 모든 경계심이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마침내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발견한 조난자의 심정과도 같았다.
"한수아 씨…… 오늘부터 바로 계셔주실 수 있나요?"
내 절박한 물음에, 수아는 서아를 안은 채 나를 돌아보며 천사처럼 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어머님. 오늘부터 어머님은 푹 쉬세요. 제가 전부 다 알아서 할게요."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다.
수아가 온 지 불과 대여섯 시간 만에 집 안의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폭탄을 맞은 것 같던 거실과 주방은 먼지 하나 없이 반짝거렸고, 널브러져 있던 서아의 옷가지들은 색깔별로 반듯하게 개켜져 서랍장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서아였다.
수아가 만들어준 유기농 단호박 타락죽을 한 그릇 깨끗이 비워낸 서아는, 목욕 후 수아의 품에 안겨 동화책 두 권을 읽더니 저녁 여덟 시 반에 스스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밤마다 두세 시간씩 울며불며 온 집안을 뒤흔들던 그 지옥 같은 투정이 단 10분 만에 끝난 것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도현은 말끔하게 정돈된 집안과 조용한 거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집이 사람 사는 집 같네. 유진아, 시터분 진짜 잘 구했다. 인상도 엄청 선하시고 차분해 보이시던데."
도현의 칭찬에 나는 오랜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응, 경력도 많으시고 서아를 너무 잘 봐주셔. 서아가 저렇게 얌전하게 자는 거 태어나서 처음 봐."
"거봐, 내가 진작 사람 쓰자고 했잖아. 당신 그동안 너무 예민하게 굴었어. 이제 당신도 좀 사람답게 꾸미고 살아."
도현의 무신경한 한마디가 가슴을 살짝 찔렀지만, 피로가 극에 달해 따질 기운조차 없었다.
"어머님, 아버님. 서아 깊이 잠들었으니 오늘은 걱정 마시고 푹 주무세요. 새벽에 서아가 깨더라도 제가 다 케어할 테니까 절대 나오지 마시고요."
수아가 방문을 열고 나와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맑은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수아 씨. 부탁 좀 할게요."
침실로 들어와 침대에 눕는 순간, 매트리스가 나를 바닥 끝까지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아이를 낳고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온전한 자유이자 안식이었다.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의식이 암전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얼마나 잤을까.
갈증이 목을 조여와 눈이 번쩍 떠졌다. 암막 커튼 틈새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협탁 위의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였다.
무려 일곱 시간을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잔 것이다.
머리가 맑아지는 쾌감과 함께, 오랜만에 느껴보는 개운함에 몸이 가벼웠다. 정말로 서아가 새벽에 한 번도 깨지 않은 건지, 아니면 수아가 알아서 다 달랜 건지 거실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수아 씨한테 물이라도 한잔 갖다줘야겠어.'
고마운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리퍼를 끌지 않고 조심스럽게 발소리를 죽이며 침실 문을 열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내린 복도를 지나 주방으로 향하려던 순간, 활짝 열려 있는 서아의 방 문틈으로 작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탠드 조명이 켜져 있었다.
서아가 자고 있을 텐데 왜 불을 켜두었을까. 혹시 서아가 아픈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발걸음을 서아의 방 쪽으로 옮겼다.
문틈 사이로 방 안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서아는 침대에서 색색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침대 옆, 서아의 방 한구석에 놓인 내 화장대 앞에 한수아가 앉아 있었다.
수아는 등을 돌리고 앉아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건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거울에 비친 수아의 행동을 본 내 발이 바닥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수아는 내 화장대 위에 놓인 내 물건들을 만지고 있었다.
단순히 정리하는 손길이 아니었다. 내가 매일 아침 바르는 특정 브랜드의 립밤을 집어 들어 뚜껑을 열고, 그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의 아랫입술에 내 립밤을 덧발랐다.
거울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은 낮에 보았던 그 순진하고 온화한 눈빛이 아니었다. 무서울 정도로 번들거리는, 기묘한 탐욕과 집착이 서린 눈이었다.
수아는 립밤을 내려놓더니, 의자 뒤에 걸려 있던 내 가디건을 집어 들었다. 내가 임신 전부터 아끼던, 내 체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짙은 남색의 캐시미어 가디건이었다.
그녀는 가디건에 얼굴을 파묻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마치 내 살 냄새를 폐부 깊숙이 집어넣으려는 것처럼.
그리고는 가디건을 자신의 어깨에 천천히 걸쳤다. 가디건의 옷깃을 여미며 거울을 바라보는 수아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말려 올라갔다.
수아가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소리는 작았지만, 고요한 새벽 공기를 타고 내 귓가에 선명하게 꽂혔다.
"……서아야,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그것은 내 목소리였다.
내가 서아를 달랠 때 내는 특유의 억양, 단어를 늘이는 미세한 습관, 심지어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이는 각도까지.
거울 속의 한수아는, 완벽하게 나를 흉내 내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얼음장 같은 소름이 쫙 돋아났다.
수면 부족으로 흐려졌던 전직 로펌 조사원의 감각이, 뇌관이 터지듯 서늘하게 번뜩였다.
구원자가 아니었다.
이 여자는 내 집에 아이를 돌보러 온 게 아니었다.
내 자리를, 나라는 인간 자체를 집어삼키러 온 괴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