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20화

20화. 진짜 엄마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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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발걸음을 가볍게 옮겼다.

집으로 향하는 길, 가을의 청명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매일 밤 나를 짓누르던 그 무겁고 축축한 절망의 공기는 이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코끝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어, 엄마!"

거실 매트 위에서 인형을 늘어놓고 놀던 서아가 내 인기척에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러고는 앙증맞은 걸음걸이로 왈칵 달려와 내 다리에 매달렸다.

작고 말랑말랑한 손이 내 허벅지를 꼭 안아 올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 솟구쳤다.

한때는 그 악마 같은 년, 이미란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에 속아 내 손길을 거부하고 울기만 하던 내 딸이었다. 엄마인 나를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던 그 지옥 같던 시간들.

하지만 이제 서아는 온전히 내 품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평온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우리 서아, 엄마 많이 기다렸어?"

"응! 채원이 이모랑 초코 케이크 먹었어. 엄마 주려고 이따만 한 조각 남겨 놨지롱!"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허공에 커다란 원을 그려 보이는 서아를 보며 결국 웃음이 터졌다.

거실 식탁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던 채원이 슬며시 안경을 벗으며 씩 웃었다.

"서류 마감은 아주 깔끔하게 끝났나 보네, 강 대표? 얼굴에서 아주 빛이 난다."

"당연하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박도현 이름으로 서명받았어. 친권, 양육권, 재산 분할 포기까지 완벽하게."

"속이 다 시원하다, 진짜. 그 인간, 자기가 지은 죗값 톡톡히 치러야지."

나는 서아를 번쩍 들어 품에 안고 소파에 앉았다. 서아는 내 품이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다는 듯 목을 끌어안고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를 퍼부었다.

모든 오물들을 완벽하게 치워낸 내 집. 내 우주.

비로소 진짜 내 자리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온몸의 감각을 깨웠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서울 신도시의 가장 중심가에 위치한 신축 상가 건물.

통유리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화이트톤으로 단정하게 꾸며진 인테리어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유리문 전면에 부착된 세련된 금속 현판이 반짝였다.

[유진 위기관리 & 가족 심리 컨설팅 사무소]

내가 사설 조사 및 위기 컨설팅 사무소를 열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무모한 짓이라며 말렸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과거의 나는 대형 로펌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받던 수석 조사원이었다. 남들의 뒤를 밟고, 은밀하게 숨겨진 증거를 수집하고, 법적 허점을 파고드는 일은 원래 내 전공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 방이 더해졌다.

신도시 전체를 뒤흔들었던 ‘베이비시터 정체성 찬탈 사건’.

내가 맘카페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통해 이미란의 가면을 완벽하게 벗겨내고 공범인 박도현까지 법적으로 처단한 과정은, 이미 이 지역 엄마들 사이에서 하나의 전설이자 신화가 되어 있었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를 구원한 진짜 엄마.’

그 상징적인 타이틀 덕분에 내 개인 SNS와 메일함에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보낸 절박한 사연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전직 로펌 조사원으로서의 전문성과, 실제 거대한 음모를 깨부수고 승리한 당사자라는 독보적인 공신력이 합쳐지자, 그 어떤 대형 로펌보다도 강력한 신뢰도가 형성된 것이다.

나는 정식으로 행정사 자격 및 민간조사원(탐정) 등록을 마쳤고, 채원의 디지털 포렌식 기술력까지 결합해 완벽한 합법적 위기 컨설팅 업체를 출범시켰다.

"와, 인테리어 진짜 기가 막히게 뽑았다. 서아 놀이방도 아주 완벽해."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아늑한 놀이방 매트를 정리하던 채원이 감탄을 터뜨렸다.

"앞으로 여기가 은밀한 지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낼 베이스캠프야. 가만히 썩히기엔 내 경력이 너무 아깝잖아."

"하긴, 강유진의 촉과 집요함은 알아줘야지. 그래서 첫 예약 고객은 언제 오신대?"

내가 미소를 지으며 책상 위의 스마트폰을 가볍게 두드렸다.

화면에는 이미 상담을 예약하고 대기 중인 문의 글이 수십 건씩 쌓여 있었다. 부당한 가정 폭력, 교묘한 정서적 학대, 그리고 누군가에게 일상을 침해당하면서도 증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이들의 피눈물 나는 사연들이었다.

내가 그 지옥을 직접 통과해 보았기에 안다.

주변의 모두가 나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할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말을 믿어주고 끝까지 싸워줄 무기를 쥐여주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달칵.

그때, 사무실 입구의 유리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지만, 불안감에 어깨를 한껏 움츠린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내 명패를 확인하더니 붉어진 눈시울로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강유진 대표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손끝이 눈에 띄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맘카페에서 대표님 사연을 봤어요. 전부 제 이야기 같아서 밤새 울다가 용기 내서 찾아왔어요. 남편이 새로 들어온 입주 도우미 말만 믿고, 저를 점점 이상한 엄마로 몰아가요…… 아이도 이제 저를 피하고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익숙한 절망의 향기였다.

나는 깊고 차분한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캐모마일 차 한 잔을 그녀의 앞으로 조심스럽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가죽 커버로 된 깔끔한 상담용 노트를 펼쳤다.

"잘 오셨습니다. 많이 무섭고 억울하셨죠?"

다정한 내 목소리에, 긴장이 풀린 의뢰인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불안해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무리 완벽한 가면을 쓰고 흔적을 지우려 해도, 진실은 반드시 꼬리가 잡히게 되어 있으니까요."

나는 부드러운 미소 속에, 숨길 수 없는 날카로운 빛을 안광에 담았다.

"이제부터 제가 당신의 눈과 귀가 되어 드릴 겁니다. 그 인간들의 가짜 가면을 뼈째로 발라내 드리죠."

노트 위에 의뢰인이 털어놓는 지옥의 연대표를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는 내 손끝에는, 단 한 줌의 흔들림도 없었다.

지독했던 폭풍우는 마침내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나를 지켜낸 그 서늘하고 날카로운 칼날로 다른 이들의 어둠을 도려낼 시간이었다.

창밖으로 유독 눈부시고 찬란한 가을 하늘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온전한 내 세상이, 마침내 완벽하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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