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17화

17화. 발악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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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입구로 불어오는 바람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기 전, 나는 보안 검색대 옆에 설치된 금속 사물함에 가죽 가방과 스마트폰, 차 키를 차례로 집어넣었다. 교정시설의 일반 접견실은 보안이 엄격했다. 변호인 접견이 아닌 이상, 두툼한 서류 가방이나 개인 소지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딸깍.

열쇠를 돌려 잠근 뒤, 내 손에 남은 것은 코트 주머니 속에 넣은 얇은 메모지 한 장뿐이었다. 채원이가 흥신소 루트와 법률 대리인을 통해 정리해 준 이미란의 범죄 혐의 요약본. 그거 하나면 저 안의 괴물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강유진 씨, 일반 접견실로 입실하십시오."

교도관의 건조한 안내에 따라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시큼한 소독약 냄새와 특유의 음산한 한기가 감도는 기다란 복도를 지나자, 아크릴 차단벽이 설치된 접견실들이 늘어서 있었다.

투명한 차단벽 너머로 푸르스름한 수의를 입은 여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한수아. 아니, 이미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집에서 내 명품 캐시미어 코트를 걸치고, 내 향수를 뿌리며 안주인 행세를 하던 그 뻔뻔하고 청순했던 자태는 온데간데없었다.

푸석하게 죽어버린 피부, 핏발 선 눈동자, 헝클어진 머리칼. 시커멓게 패인 다크서클 아래로 경련하듯 떨리는 입술이 보였다.

철컥하는 소리에 이미란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차단벽 너머의 나를 발견한 순간, 그녀의 동공이 미친 듯이 일렁이더니 이내 짐승 같은 살의로 타올랐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코트 자락을 정돈하며 우아하고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단정한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긴 뒤, 구멍이 뚫린 차단벽 옆의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었다.

이미란은 수화기를 부서뜨릴 듯 낚아채더니, 아크릴 벽에 이마를 바짝 밀어붙이며 악을 써댔다.

"강유진……! 네가 감히 여길 기어들어 와?! 네가 그러고도 온전할 줄 알아?!"

스피커를 타고 넘어오는 목소리는 긁히고 찢어져 있었다. 마치 뱀이 쉭쉭거리는 소리 같았다.

"사람을 이딴 썩은 구덩이에 처박아 두고 네가 밖에서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누군지 잊었어? 네 그 한심한 남편도, 네 딸년도 전부 내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았던 사람이야, 내가!"

"목소리 낮춰. 귀 썩겠으니까."

나는 다리를 꼬며 차갑게 대꾸했다. 내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에 이미란의 턱관절이 경련하듯 떨렸다.

"뻔뻔한 년! 겉으로는 세상 순진한 척, 독박 육아에 미쳐서 질질 짜는 척 연기하더니……! 뒤에서 카메라를 심고 도청기를 깔아? 흥신소 쓰레기들까지 끌어들여서 내 뒤를 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병이네."

나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내 집에서 내 향수를 뿌리고, 내 옷을 입고, 내 말투를 베끼며 나를 지워버리려던 도둑년이 할 말은 아니지. 세 살배기 내 딸아이한테 초록색 딸랑이로 공포를 심어놓고, 친엄마를 거부하게 만든 그 얄팍한 머리통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하! 도둑년? 내가 왜 도둑년이야!"

이미란이 주먹으로 아크릴 벽을 쾅 때렸다. 투명한 벽 안쪽에 더러운 침방울이 튀었다.

"그 집에서 진짜 엄마 노릇을 한 게 누군데! 서아 밥 챙겨 먹이고, 재우고, 울음 달랜 건 나였어! 넌 방구석에 처박혀서 불면증에 미쳐 가던 실패자였잖아! 네 그 번지르르한 집도, 멍청해서 다루기 쉬운 박도현도, 서아 엄마라는 그 자리도…… 전부 너한테는 과분했어! 원래 네 자리 같은 건 없었다고! 내가 가져가는 게 맞았어!"

소시오패스의 기괴한 논리가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남의 행복을 빼앗는 것에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병적인 피해망상과 열등감.

나는 그 광기 어린 눈동자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코트 주머니에서 얇은 메모지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아크릴 벽에 밀착시켰다.

그곳에는 간결하지만 끔찍한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박도현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 그 인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 궁금하지 않아?"

"……뭐?"

"박도현, 오늘 회사에서 최종 징계해고 처리됐어. 대기업 팀장이라는 껍데기가 드디어 벗겨진 거지."

이미란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네가 시켜서 그 인간이 넘긴 기술 자료 말이야.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 박도현을 상대로 5억 원 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어. 게다가 업무상 배임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진행 중이라 조만간 구속 영장이 발부될 거야."

"거짓말…… 도현 씨가 그럴 리 없어! 날 위해 모든 걸 다 하겠다고 했던 사람이야!"

"아직 끝이 아니야."

나는 생긋 웃으며 메모지의 아랫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네가 박도현 명의를 도용해서 제3금융권이랑 사채업자들한테 받아낸 가계 대출 말이야. 그거 전부 박도현 앞으로 청구서 날아갔어. 대충 합쳐도 3억이 넘더군. 이혼 소송으로 재산도 양육권도 나한테 다 털린 마당에 그 빚까지 떠안았으니, 그 잘나신 대기업 팀장님은 이제 신용불량자 거지가 된 거지."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 남자가 널 진짜 사랑해서 명의까지 내준 줄 알았니?"

나는 혀를 차며 차가운 조소를 날렸다.

"그 인간은 그냥 남의 시선에 미쳐서, 완벽한 아내와 천사 같은 시터의 보살핌이라는 환상에 취해 있던 등신일 뿐이야. 네 가스라이팅에 제 발로 기어 들어와 인생을 통째로 말아먹은 불쌍한 공범이고. 네가 완벽하게 판을 짰다고 착각했겠지만, 내 눈엔 그저 파멸을 향해 뛰어드는 벌레 두 마리로밖에 안 보였어."

"닥쳐! 닥쳐, 이 미친년아!"

쾅! 쾅!

이미란이 광기 어린 기세로 차단벽을 내리쳤다. 뒤에 서 있던 교도관 둘이 순식간에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그러나 이미란은 핏발 선 눈으로 나를 찢어발길 듯 노려보며 짐승 같은 숨을 헐떡였다.

나는 아크릴 벽에 붙였던 메모지를 아주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수화기에 대고 속삭였다.

"그만 발악해. 추하니까, 이미란."

낮고 또렷하게 울린 그 진짜 본명에, 발버둥 치던 이미란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빠져나가며 잿빛으로 질려갔다.

"3년 전 송도 펜트하우스. 남편은 의사였고, 아내는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지. 넌 그 집에 입주 시터로 기어 들어가 안주인의 정신을 갉아먹고 결국 파탄을 냈어."

"……너, 어떻게……."

"그때는 집안에 카메라나 증거가 없어서 사문서 위조와 단순 사기 정도로 가벼운 처벌만 받고 나왔지? 출소하자마자 '한수아'라는 가짜 신분증을 사고 자격증을 위조해서 내 집으로 들어왔고."

나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이미란을 응시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이미란. 네가 저지른 신분 위조, 공문서 위조 및 행사, 영유아 정서적 아동학대. 거기에 박도현의 명의를 도용한 거액의 대출 사기까지."

……!

"이미 송도 사건의 전과가 있는 상태에서 동종 범죄를 저질렀고, 피해 규모와 수법이 극도로 악질적이라 검찰에서도 아주 벼르고 있더군. 병합된 죄목만으로도 최소 실형 7년 이상은 확정이야."

이미란의 입술 사이로 딱딱거리는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단순히 남의 가정을 깨뜨리고 안주인 행세를 하려던 기괴한 탐욕이, 거대한 법의 칼날이 되어 그녀의 목덜미를 베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유능한 국선 변호사를 붙여도 넌 감옥에서 청춘을 다 보내야 해. 네 그 비열하고 흉측한 탐욕은 이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전부 썩어 문드러질 거라는 뜻이지."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난 단지 내 자리를 찾으려고 한 것뿐이야!"

이미란이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네 자리가 어디 있었는데?"

나는 차갑게 쏘아붙였다.

"남의 가정에 기생충처럼 침투해서, 남의 남편을 홀리고, 남의 아이를 학대하며 빼앗으려 했던 게 네 자리였어? 넌 가짜야. 내 옷을 입고 내 향수를 뿌려도, 넌 평생 남의 삶을 탐내다 쓰레기통에 처박힐 위조품일 뿐이라고."

"으아아아악! 강유진! 너 내가 나가면 죽여버릴 거야! 네 딸년도, 너도 내가 가만 안 둬! 죽여버릴 거라고!"

이미란이 수화기를 집어던지며 아크릴 벽으로 온몸을 날렸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이마가 아크릴 벽에 부딪쳐 붉게 물들었다.

"수용자,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교도관들이 이미란의 팔을 뒤로 꺾으며 강제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이미란은 끌려가면서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비명을 질렀다.

"놔! 이거 놓으라고! 강유진! 내가 널 가만 둘 줄 알아?! 네 인생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으아아악!"

그녀의 비명 소리가 복도 너머로 멀어질 때까지,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마침내 수화기 너머로 완전한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구치소 건물을 빠져나오자, 가을의 끝자락을 알리는 쓸쓸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하지만 내 가슴속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맑게 개어 있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 사물함에서 꺼낸 스마트폰을 켰다. 화면이 켜지기 무섭게 채원이가 보낸 메시지와 사진이 떠올랐다.

[클린 완료. 서아 맘, 이제 집으로 오지?]

사진 속에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우리 집 거실이 담겨 있었다. 초록색 딸랑이 인형 같은 기괴한 물건들은 전부 쓰레기봉투에 담겨 사라진, 온전한 우리 집.

그곳에서 서아가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함도, 공포도 없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의 진짜 미소였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분노나 복수심이 아닌, 내 아이를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완전한 해방감이었다.

"가자, 서아한테."

나는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내 자리를 노렸던 완벽한 시터는 사라졌다. 이제 그 자리에는 오직 진짜 엄마인 나와, 사랑하는 내 딸 서아만이 존재할 뿐이다.

차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더 이상 나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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