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15화

15화. 진짜 엄마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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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현이 수갑을 찬 채 경찰차에 태워져 떠나고, 그 요란하던 소음이 집 안에서 완전히 걷히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세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어느새 늦은 가을을 지나 코끝이 시린 겨울의 초입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 세 달 동안, 내 세계는 천천히, 하지만 아주 정갈하고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엄마, 이거 봐아."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은 친정집 거실. 서아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알록달록한 그림책을 내밀며 배시시 웃었다.

"우리 서아, 엄마랑 동화책 읽을까?"

"응! 엄마가 읽어줘."

아이를 품에 안자 보드랍고 따뜻한 살 내음이 가슴 가득 퍼졌다. 그 지옥 같던 시간 속에서 아이의 마음에 새겨졌던 깊은 상처는 나의 온전한 사랑과 헌신으로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한때 이미란이 서아에게 내면화시켰던 기괴한 공포의 매개체, 초록색 딸랑이 인형은 사건 당일 내 손으로 쓰레기통에 처박아 불태워버렸다. 이제 서아는 초록색을 보아도 발작하지 않았고, 밤마다 악몽에 울며 깨어나지도 않았다.

진짜 엄마의 품이 주는 안도감이 아이의 영혼을 구원한 것이다.

"서아 마당에서 할머니랑 낙엽 밟고 놀까?"

"좋아!"

친정엄마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뛰어 나가는 서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코트 깃을 단단히 여몄다. 이제 정말 마지막 오물을 청소할 시간이었다.


서울남부구치소 접견실.

두꺼운 투명 아크릴 차단벽 너머로 걸어 들어오는 여자의 모습은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한수아라는 가짜 이름으로 내 집에 머물 때 보여주던 그 단정함과 기품은 온데간데없었다. 부스스하게 떡진 단발머리, 핏기 없이 푸석하게 굳어버린 얼굴. 내 말투와 옷차림, 향수까지 기괴하게 모방하며 이 집의 안주인이 되겠노라 설쳐대던 소시오패스의 민낯이었다.

수의를 입은 이미란이 쇠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딸깍.

내가 송수신기를 들자, 아크릴 벽 너머에서 미란의 낮고 갈라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결국 왔네. 강유진 씨."

초점 없는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독기와 비틀린 탐욕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나보다 우위에 서 있는 양, 마른 입술을 억지로 비틀어 올리며 비웃었다.

"여기까지 와서 비참한 내 꼴 보니까 기분이 좋아? 하지만 어쩌지. 나 기껏해야 신분증 위조랑 주거침입 정도로 길어야 몇 달 살고 나가."

"……."

"당신들이 아무리 기를 써봤자 3년 전 타운하우스 사건은 기소조차 못 해. 경찰이 무슨 수로 증거를 찾겠어? 내 명의로 된 계좌나 서류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는데."

그녀는 자신이 만든 가명과 대포폰의 장벽이 완벽하다고 믿는 듯했다. 그 얄팍한 확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에는 오직 차가운 냉소만이 감돌았다.

나는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내 아크릴 벽면에 바짝 밀착시켰다.

"과연 그럴까, 이미란 씨."

서류의 첫 장을 확인한 이미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사시나무 떨듯 흔들렸다.

"당신이 꼬리를 아무리 잘 잘랐어도, 밟고 지나간 진흙탕까지 지울 수는 없어. 내 친구 채원이가 어떤 인물인지는 잊었나 보네."

"이, 이게 뭐야……?"

"네가 차명으로 사용하던 알뜰폰의 금융 인증서 접속 IP 기록. 그리고 그 대포통장에서 네 친오빠 명의의 해외 거래소 계좌로 매달 송금된 암호화폐 트랜잭션 내역이야. 자금 세탁의 최종 목적지가 결국 네 가족의 품이었다는 뜻이지."

이미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3년 전 타운하우스 사건의 피해자분, 기억하지? 네 가스라이팅 때문에 정신병원에 갇혀야 했던 진짜 아내분 말이야."

"그 여자가 왜……!"

"그분, 지금은 퇴원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 계셔. 내가 연락해서 네가 구속되었다는 사실과 모든 증거를 넘겨드렸거든. 그분 역시 이번 주에 널 상습 사기 및 상해 혐의로 정식 고소하셨어. 네가 했던 짓은 일회성 일탈이 아니라 전형적인 '패턴'을 가진 상습 범죄라는 게 증명된 거지."

나는 서류 한 장을 더 넘겨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전문 사설 감정 기관의 직인이 찍힌 음성 분석 보고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이건 네가 우리 집 서아의 방 모빌에 설치된 도청기 앞에서 아이에게 속삭였던 음성 파일이야. '엄마는 미친년이야, 네 엄마는 널 사랑하지 않아.' 채원이가 복구해 둔 이 파일을 사설 전문 기관에 맡겨 정밀 감정서를 받아냈고, 경찰 수사 단계에서 이미 정식 증거로 채택되었어."

"……!"

"상습 신분 위조, 주거침입, 정서적 아동학대, 그리고 3년 전 사건까지 경합범으로 묶여 검찰이 구속 기소했어. 최소 실형 5년 이상은 피할 수 없을 거야. 네 친오빠 역시 범죄수익 은닉 및 사기 방조 혐의로 입건되었고."

이미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철옹성이라 믿었던 그녀의 거짓말이 내 손끝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겨우 그딴 증거로 내가 왜! 난 완벽했어! 내가 당신보다 훨씬 더 우아하고 완벽한 엄마였단 말이야!"

이미란이 이성을 잃고 송수신기를 쥔 채 아크릴 벽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간수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제압했다.

나는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아, 발악하는 괴물을 처연하게 내려다보았다.

"착각하지 마. 넌 그저 남의 행복을 질투해 훔치려 한 빈 껍데기 기생충일 뿐이야. 네가 탐냈던 내 자리는, 네가 평생을 발버둥 쳐도 가질 수 없는 거였어."

"강유진! 죽여버릴 거야! 나가기만 하면 당신이랑 그 기집애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평생 그 좁고 차가운 방 안에서 내가 누리는 행복을 질투하며 썩어가길 바랄게."

탁.

나는 가차 없이 송수신기를 내려놓았다. 아크릴 벽 너머에서 미란의 비명과 절규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지만, 내 귀에는 단 한 마디도 닿지 않았다.

접견실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같은 날 오후, 강남의 한 법무법인 회의실.

테이블 맞은편에는 불과 석 달 사이에 완전히 폭삭 늙어버린 박도현이 앉아 있었다. 대기업 팀장으로서 부하 직원들을 거느리며 거드름을 피우던 오만함은 흔적조차 없었다.

머리칼은 희끗희끗해졌고,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유진아……."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박도현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 손을 잡으려 했다.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 손을 쳐내고 자리에 앉았다.

"앉아. 시간 낭비하기 싫으니까."

"내가 정말 미쳤었어. 그 시터 년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눈이 멀었던 거야!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가 헤아리지 못했어.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줘, 어? 우리 서아를 봐서라도……."

박도현이 애원하며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가증스럽고 비겁한 눈물이었다. 시터와 한통속이 되어 나를 정신병자로 몰아가고, 내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으려 획책하던 남자의 말로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했다.

"그 혓바닥 놀릴 시간 있으면 서류나 확인해."

나는 가방에서 법률 대리인 공인 서식이 인쇄된 재산포기각서와 양육권 포기 합의서를 꺼내 테이블 위로 미끄러뜨렸다.

박도현이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집어 들었다. 서류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안색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었다.

"이, 이게 무슨……! 양육권 포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재산 분할 포기라니! 유진아, 나 지금 회사에서 해고당했어!"

그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뒤틀렸다.

"회사 게시판에 내 체포 사실이랑 아동학대 방조 혐의가 전부 까발려져서 품위유지 위무 위반으로 징계해고당했다고! 대출금 갚고 나면 나 정말 길바닥에 나앉아! 나한테 최소한의 살길은 열어줘야 할 거 아냐!"

도현의 변호사가 한숨을 쉬며 도현의 어깨를 짚었다.

"박도현 씨, 진정하십시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턱을 괴고 도현을 차갑게 응시했다.

"당신 상황 파악이 아직도 안 돼? 경찰에 제출된 당신의 아동학대 방조,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그리고 주거침입 현행범 체포 기록은 빼도 박도 못하는 사실이야. 수사기관에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도 확인했고."

"유진아…… 제발……."

"당신이 전과자가 되어 감옥에 가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딱 하나뿐이야. 피해자인 내 '처벌불원서'와 형사 합의서가 법원에 제출되는 것."

나는 도현의 손에 든 펜을 툭툭 쳤다.

"선택해. 친권과 양육권을 완전히 포기하고, 재산 분할 청구권 역시 포기하겠다는 합의서에 도장 찍을래? 아니면 이대로 재판받고 전과자가 되어 감옥에 갈래?"

도현이 절망적인 얼굴로 옆에 앉은 변호사를 바라보았다.

변호사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도현 씨, 서명하시는 게 본인 인생을 위해 최선입니다. 이미 확보된 녹취록과 영상의 증명력이 너무 강력해서, 합의 없이 재판으로 가면 실형 선고율이 극도로 높습니다. 전과자가 되어 복역하는 것보다는 재산을 포기하고 집행유예로 마무리 짓는 게 현명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전부 포기하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안 남는데……."

"당신이 자초한 일이야."

내 단호한 목소리에 박도현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만년필을 쥐었다. 한 자, 한 자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 같았다.

서명란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박도현과의 지긋지긋했던 법적 고리가 완벽하게 끊어졌다.

나는 도장이 찍힌 합의서와 각서를 수거해 가방에 넣었다.

"합의서는 약속대로 변호사 편으로 송부할게. 다행인 줄 알아, 박도현 씨. 내 딸 서아의 생부에 대한 마지막 자비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향해, 박도현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유진아…… 우리 정말 이렇게 끝인 거야? 한때는 사랑했잖아……."

"당신이 내 신뢰를 짓밟고, 내 아이를 방치했을 때 우리는 이미 끝났어. 다시는 내 눈앞에, 그리고 서아 앞에 나타나지 마."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실을 걸어 나왔다. 회의실 문이 닫히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 맺혀 있던 마지막 응어리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 어느 주말 오후.

우리 세 가족—나와 서아, 그리고 언제나 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었던 채원이 거실에 모여앉았다. 따뜻한 벽난로 조명 아래에서 채원이 달콤한 코코아가 담긴 머그잔을 내밀었다.

"진짜 고생 많았다, 강유진. 이제 진짜 끝이네."

"고마워, 채원아.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 그 괴물 같은 시터한테 내 모든 걸 빼앗겼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제 발로 함정에 걸어 들어간 괴물을 사냥한 건 결국 너였어. 난 그저 거들었을 뿐이지."

채원이 윙크를 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내 무릎 위에 누워 새근새근 잠든 서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정서적으로 불안해하며 나를 거부하고 시터의 손길만을 갈구하던 아이는, 이제 오직 내 품에서만 완벽한 평온을 느낀다.

빼앗길 뻔했던 엄마의 자리. 무너질 뻔했던 내 삶의 주권.

나는 내 힘으로, 완벽하고 철저하게 적들을 매장하며 내 모든 것을 되찾았다.

창밖으로 하얀 눈송이가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더러운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듯이.

잠든 서아의 뺨에 살포시 입을 맞추며, 나는 나직하게 다짐했다.

어떤 풍파가 들이닥친다 해도, 이 아이와 내 삶은 온전히 내가 지켜낼 것이라고.

나의 완벽한 승리이자, 진정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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