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14화

14화. 완벽한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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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감 면회실을 나와 차가운 복도를 걸어 나오는 동안, 발걸음마다 서리던 무게감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철문이 닫히며 둔탁한 소리가 뒤편에서 울렸다. 남의 삶을 도둑질하고 한 가정을 통째로 삼키려던 소시오패스, 이미란의 마지막은 결국 사방이 막힌 유치장과 징역살이 뿐이었다.

구치감 건물 밖으로 들어서자, 알싸한 겨울 바람이 폐부 깊숙이 밀려들었다. 지독하게 나를 조여 오던 가스라이팅의 오물이 드디어 말끔히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길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채원의 이름이 떠 있었다.

"어, 채원아."

"유진아, 면회는 잘 끝났어? 그년 꼴이 아주 볼만했겠네."

"응. 제 죄수 번호나 외우면서 평생 썩게 될 거야. 법정에서 선고받을 형량까지 생각하면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못해."

"속이 다 시원하다. 참, 서아는 방금 우리 어머니 댁에 잘 도착했어. 네 친정어머니도 오셔서 서아 안고 눈물부터 터뜨리시더라. 서아는 집에서 가져온 애착 인형 쥐여주니까 분유 잘 먹고 방긋 웃다가 잠들었어."

채원의 따뜻한 목소리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마음의 끈이 비로소 느슨해졌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채원아."

"별말을 다 한다. 참, 이미란이 쓰던 그 기괴한 초록색 딸랑이 인형은 내가 쓰레기 수거장에 단단히 봉해서 버렸으니까 신경 쓰지 마. 서아 마음에서도 그 잔재는 싹 사라질 거야."

딸 서아는 오늘 아침 일찍 친정엄마와 채원의 보호 아래 피신시켰다. 더 이상 더럽고 잔혹한 싸움터를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으니까. 아이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자, 내 안의 감각들이 다시 냉정하고 날카롭게 세워졌다.

이제 내 집에 당당히 들어앉아 있는 마지막 오물을 치울 차례였다.

"유진아, 네 집 보안 서버에서 비상 알림이 떴어."

채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박도현이 조금 전에 거실 도어록 비밀번호 누르고 무단으로 들어갔어. 시어머니 김정숙 씨도 같이 동행한 모양이야."

"역시나 제 발로 덫에 걸려들었네."

나는 차가운 냉소를 흘렸다.

전직 로펌 조사원 출신인 내가 법원으로부터 박도현에 대한 접근금지 및 퇴거 임시조치 결정문을 받아내고도, 도어록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은 이유.

그건 결코 실수가 아니었다. 박도현을 완벽한 현행범으로 엮어 넣기 위한 마지막 밑밥이었다.

비밀번호를 바꿔서 아예 못 들어오게 막으면 그자는 밖에서 맴돌며 합의를 구걸하거나 지루한 법적 공방을 늘어뜨릴 터였다. 하지만 법원의 접근금지 및 퇴거 명령이 정식으로 송달된 상태에서 스스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내 집에 발을 디디는 순간.

그건 단순한 가정 불화가 아니라, 명백한 주거침입이자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현행범이 된다.

제 발로 지옥 불에 머리를 밀어 넣도록 멍석을 깔아둔 것이었다.

"박도현 회사 상황은 확인했어?"

"응. 네가 고생해 준 덕분에 빠르게 움직였더라."

"대기업 사내 감사팀 정식 제보 채널로 이미란의 신분 위조, 서아 정서 학대 증거, 박도현의 방조 및 가스라이팅 정황을 담은 정식 감사 요청 서류를 접수했잖아. 동시에 블라인드에 ‘시터와 작당해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고 아이를 방임한 대기업 팀장의 실체’라는 글까지 올렸고."

채원이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당사자 소명 절차가 필요해서 당장 오늘 직위해제까지는 안 나오지만, 사내 감사팀에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즉시 감사 착수 및 ‘출근 정지’ 명령을 내렸대. 팀장 보직에서도 즉각 대기발령 처리됐고. 회사에 소문 다 퍼져서 박도현 지금 완전히 눈 돌아간 상태야."

"자기 평판과 직급에 목숨 걸던 인간이니, 긴급 출근 정지 소식에 제정신이 아니겠지."

"응. 방금 법원에 접수된 재산 분할 강제집행 절차 서류랑 양육권 관련 안내문도 박도현 이메일과 등기로 송달됐을 거야. 자, 이제 어떻게 할까?"

"미리 준비한 대로 진행해. 내가 관할 지구대에 정식으로 동행 요청을 해뒀어. 접근금지 임시조치 결정문 원본이랑 실시간 카메라 영상 들고 가니까, 너는 보안 서버 기록만 백업해 줘."

"알았어. 집 안 초소형 캠 4대 실시간 스트리밍 제어권 전부 네 스마트폰으로 연동해 놨어. 경찰관들 올 때까지 절대 혼자 들어가지 마."

"걱정 마. 내 손으로 완벽하게 끝낼 거니까."

통화를 끊고 차에 올랐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자 박도현에게서 온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폭언 섞인 문자가 빗발치고 있었다.

"유진아 제발 전화 좀 받아봐! 회사 감사팀에서 긴급 출근 정지랑 감사 착수 통보가 왔다고! 당장 게시글 내려달라고 해줘!"

  • 어머니까지 모시고 왔는데 집 문에 법원 서류가 붙어 있는 게 말이 돼? 당장 집으로 들어와!

"재산포기각서고 뭐고 다 협박에 의한 거니까 무효야! 내가 이대로 순순히 쫓겨날 줄 알아? 서재에 있는 서류랑 통장 다 찾아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비열한 구걸과 적반하장의 협박.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를 정서적 이상자로 몰아가며 시터와 함께 내 아이와 집을 빼앗으려던 남자의 비참한 밑바닥이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도착하자, 내가 미리 연락해 둔 관할 지구대의 순찰차 한 대가 로비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자, 경위 계급장을 단 경찰관과 경장 한 명이 차에서 내렸다.

"강유진 씨 되십니까? 관할 지구대에서 나왔습니다. 접근금지 임시조치 위반 관련하여 동행 요청해주셔서 출동했습니다."

"네,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가방에서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접근금지 및 퇴거 임시조치 결정문’ 원본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켜 거실 장식장과 서재 스탠드에 숨겨진 초소형 와이파이 캠의 실시간 화면을 경찰관들에게 내밀었다.

화면 속 서재에서는 박도현이 서랍을 샅샅이 뒤지며 재산포기각서와 통장, 도장 따위를 찾느라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시어머니 김정숙은 안방에서 내 명품 옷가지와 가방을 바닥에 내던지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경위의 눈빛이 매섭게 돌아서며 서류의 도장을 확인했다.

"피의자 박도현 씨에게 퇴거 및 100미터 이내 접근금지 명령이 어제 날짜로 정식 송달된 기록이 확인되는군요. 명백한 법원 명령 위반 및 주거침입 현행범입니다. 즉시 동행하시죠."

"네, 부탁드립니다."

엘리베이터가 18층에 도달했다. 차가운 현관문 앞에 서서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자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강유진!"

서재 서랍을 뒤엎던 박도현이 현관 소리를 듣고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튀어나왔다. 손에는 내가 보관해 둔 예금 통장 몇 개가 쥐여 있었다.

"너 미쳤어? 블라인드에 그딴 글을 올려서 회사에 소문을 내? 감사팀에서 조사 착수한다고 나한테 출근 정지까지 내렸어! 네가 감히 내 직장을 건드려? 당장 회사에 전화해서 오해라고 말해!"

안방에서 옷가지를 내던지던 시어머니 김정숙도 헐떡거리며 뛰어나왔다.

"에고고, 저 독한 년! 어디 남편 밥줄을 끊어놓고 뻔뻔하게 들어와? 오냐, 잘 왔다! 내 아들 망쳐놓고 네가 무사할 줄 알아? 그 재산포기각서인지 뭔지 당장 찢어버려!"

두 사람의 악에 받친 고함은, 내 뒤를 따라 들어온 제복 차림의 경찰관 두 명을 본 순간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경, 경찰?"

박도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경위가 신분증을 내보이며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도현 씨 되십니까. 강유진 씨에 대한 가정폭력처벌법 위반, 법원의 접근금지 임시조치 명령 위반 및 주거침입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찰칵.

차가운 쇠붙이 소리와 함께 박도현의 양 손목에 묵직한 수갑이 채워졌다.

"잠깐만요! 이거 놓으세요! 이거 제 집입니다! 내 마누라 집이라고요!"

박도현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발악했다.

"피의자 명의의 집이 아닙니다. 강유진 씨 단독 명의 주택이며, 법원으로부터 퇴거 명령 및 접근금지 임시조치가 정식 발부된 장소입니다. 서류를 무단으로 뒤지고 계신 현장도 확보되었습니다."

경장과 경위가 박도현의 양팔을 단단히 제압해 끌어내렸다.

"유진아! 제발! 어머니 보고 계시잖아! 내가 잘못했어, 어? 출근 정지만 풀리게 해줘! 회사에서 잘리면 우리 다 끝장이야!"

박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이 되어 구걸로 바뀌었다. 나를 정서적 이상자로 몰아세우며 시터와 작당해 가스라이팅을 일삼던 대기업 팀장의 오만함은 흔적조차 없었다.

"악! 내 아들한테 수갑을 채워? 이 악독한 년이 경찰까지 불러서 내 아들을 망쳐?"

시어머니 김정숙이 비명을 지르며 손톱을 세우고 나에게 달려들려 했다.

"어머니, 가만히 계세요! 경찰관의 정당한 집행을 방해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로 함께 체포될 수 있습니다!"

경장 한 명이 김정숙의 앞을 단단히 막아서며 차갑게 경고했다. 김정숙은 경찰의 기세에 눌려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난장판이 된 서재 입구에 서서, 수갑을 찬 채 끌려가는 박도현을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도현 씨."

내 나지막한 목소리에 박도현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미란이가 감옥에서 자기 죄수 번호를 외우고 있듯, 당신도 곧 사법기관과 법원에서 당신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캠 영상, 음성 파일, 가스라이팅 정황 증거까지 모조리 법원에 제출했으니까."

"유진아…… 제발, 한 번만……!"

"당신이 버린 건 날 향한 신뢰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인생이야. 내 집에서 당장 나가."

경찰관들이 박도현을 끌고 현관 밖으로 나갔다. 복도 너머로 박도현의 비참한 절규와 시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멀어져 갔다.

쿵.

현관문이 닫히고, 마침내 집 안에는 완전한 고요가 찾아왔다.

나는 거실 한복판에 섰다. 난장판이 된 서재와 안방이 보였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맑았다.

스마트폰을 꺼내 집 안 곳곳에 숨겨두었던 초소형 와이파이 캠과 감시 시스템의 스위치를 하나씩 꺼나갔다. 나를 지키기 위해 설치해야만 했던 그 억압적인 장치들을 내 손으로 직접 정리하는 순간, 비로소 진짜 해방감이 온몸을 감쌌다.

지잉-

채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도현 경찰서 연행 확인했어. 접근금지 위반건이랑 주거침입 건으로 바로 형사 입건될 거야. 구체적인 법적 조치랑 접근금지 결정문 연장 건도 내가 우리 측 변호사한테 다 넘겼으니까 걱정 마. 이제 정말 네 세상이야, 유진아.]

'이제 네 세상이야.'

그 문장을 가만히 되뇌었다. 빼앗길 뻔했던 엄마의 자리, 내 삶의 존엄, 그리고 딸 서아와 함께할 평화로운 일상. 그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완벽하게 되찾았다.

나는 가방을 챙겨 들고 단단한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했다. 이제 서아가 기다리고 있는 친정으로 갈 시간이었다.

더 이상 내 자리를 노리는 기생충은 없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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