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를 노리는 완벽한 시터 — 12화

12화. 드러나는 잔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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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유진아?”

도현이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현관 앞에 선 나는 비틀거리지도, 초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며칠간 충분히 휴식을 취한 사람처럼 눈빛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미란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순간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그녀는 이내 본능적으로 표정을 갈아 끼웠다. 방금 전까지 와인잔을 부딪치며 승리의 미소를 짓던 오만함은 감쪽같이 지워졌다.

“어머, 언니……?”

이미란은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손끝을 바르바르 떨며 내게 다가오려는 그녀의 연기는 완벽에 가까웠다.

“정말 다행이에요. 어디 아프셔서 연락도 없이 나가신 줄 알았잖아요. 아버님, 어머님까지 놀라서 오시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그녀는 슬그머니 시어머니의 팔을 붙잡으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전했다.

“언니가 며칠 동안 집에 안 들어오고 연락이 끊기니까, 서아도 엄마를 찾으면서 울고…… 제가 얼마나 애를 쓰며 버텼는지 아세요? 경찰까지 부른 건 서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

“언니, 혹시 많이 힘들어서 그러셨던 거죠? 제가 다 이해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고…….”

말을 잇는 이미란의 눈동자는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이 이 판을 쥐고 흔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이미란은 자신이 파놓은 덫에 내가 걸려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내가 가출한 '정서 불안 엄마'라는 프레임을 완성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경찰에 아동 유기 및 학대 신고를 넣었고, 도현의 스마트폰을 이용해 시부모님까지 이 집으로 불러들였다. 내가 완벽한 죄인이 되어 쫓겨나도록 판을 짜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 모든 자승자박의 쇼야말로, 내가 그녀를 완벽하게 짓밟기 위해 의도적으로 열어준 무대였다는 것을.

도현은 그 가증스러운 눈물에 또다시 흔들리는 눈치였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다그쳤다.

“유진이 너, 정말 왜 이러는 거야? 미란 씨는 지난 며칠 동안 밤낮으로 우리 서아 돌보면서 이 집을 지켰어. 네가 가출해 놓고 왜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시어머니 역시 이미란의 손을 맞잡으며 나를 향해 핏대를 세웠다.

“그래! 저 착하고 성실한 시터 선생이 네 빈자리를 채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애를 방치하고 돌아다니다가 이제 와서 큰소리야? 네가 엄마 자격이 있기나 해?”

이미란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도현과 시부모님이 자신을 든든한 방패로 삼아줄 것이라 확신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광경을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래, 연기 하나는 기가 막히네. 네가 판 판이니, 네가 만든 결말도 똑같이 받아들여야지.”

내가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이자, 내 뒤에 서 있던 채원이 묵직한 서류 가방을 내려놓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채원의 손에는 작은 무선 컨트롤러가 들려 있었다.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채원은 며칠 전부터 움직였다. 우리가 이미란의 위조된 신분증을 확보한 직후, 채원은 대전지법 관할의 사법 데이터베이스 백업 서버와 전국 지자체 주민등록 말소 이력망을 시차 없이 뚫어두었던 참이었다. 그녀가 흥신소 인프라를 활용해 이미란의 진짜 전과 기록과 신분 세탁 루트를 역추적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란이 자신의 가면 뒤에 숨어 활개 치던 그 시각, 채원은 그녀가 과거 다른 가정에서 벌였던 범죄의 판결문 초본과 원본 주민등록등본까지 전부 클라우드 로컬 서버에 안전하게 동기화해 둔 상태였다.

“네가 지난 며칠 동안 이 집에서 어떤 짓을 벌였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복기해 줄까?”

이미란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전 부당한 일은 한 적이 없어요.”

“부당한 일?”

채원은 대답 대신 스마트폰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미란이 서아를 재운다는 핑계로 방에 들어가 몰래 학대하던 그 시각, 이미 사전에 유진의 스마트 홈 허브에 심어둔 로컬 우회 프로토콜을 통해 거실 TV의 내부 네트워크망에 안전하게 접속해 둔 상태였다. 초소형 와이파이 캠에 저장되어 있던 누적 스트리밍 데이터 중 가장 결정적인 파일 하나를 거실 디스플레이로 즉각 송출할 수 있도록 채원이 기술적 세팅을 마무리해 둔 것이다.

채원의 조작에 따라 거실 벽면에 걸린 대형 스마트 TV가 깜빡이며 외부 입력 모드로 전환되었다.

삐-익.

스마트 TV 스피커를 타고 거슬리는 소음과 함께 익숙한 공간이 송출되었다. 서아의 방이었다.

[아빠한테 이를 거야. 엄마한테 이를 거라고!]

화면 속에서 서아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 안은 불이 꺼져 있어 어두컴컴했다. 서아는 방문을 두드리며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울지 마. 시끄러워.]

화면 속 이미란의 목소리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상냥한 시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입꼬리를 싸늘하게 비틀고, 서아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내며 침대 구석으로 몰아넣는 모습이 초소형 와이파이 캠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 찾아? 그 더러운 년이 너 버리고 도망갔어. 이제 이 집에 진짜 엄마는 나야. 울면 이 어두운 방에 하루 종일 가둘 거야, 알았어?]

[흐으…… 으아아앙! 엄마아!]

[시끄러, 닥쳐!]

이미란이 서아의 입을 거칠게 틀어막는 장면까지 선명하게 송출되었다. 거실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시어머니는 턱이 빠진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고, 시아버지는 핏발 선 눈으로 TV 화면을 노려보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현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천천히 이미란을 돌아보았다.

“수…… 수아 씨? 이게…… 이게 뭐야……?”

도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이미란은 곧바로 이가 갈리는 소리를 내며 악을 썼다.

“아니야! 저건 명백한 조작이에요! 저 여자와 그 친구가 짜고 날 음해하려고 만든 가짜 영상이라고요! 와이파이 해킹을 통해 조작된……”

“조작?”

채원은 코웃음을 치며 서류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탁자에 던졌다. “이 영상에 찍힌 메타데이터랑 음성 주파수, 타임스탬프는 국과수 표준 포맷 그대로야. 그리고 네가 과거 대전지법 관할에서 신분 세탁하고 다른 가정을 박살 냈을 때의 판결문 초본이랑, 너치고는 너무 허술하게 위조된 주민등록등본 원본이지? 이거 다 내가 흥신소 인프라를 통해 미리 확보해 둔 증거야. 실시간으로 원격 조회까지 연동해 두었으니 우길 생각 하지 마.”

채원이 태블릿 화면을 두드리자, 대형 TV의 화면이 분할되며 법원 전산망의 판결문 스캔본과 이미란의 진짜 신원 조회 결과가 실시간 데이터 스트림으로 띄워졌다.

도현은 눈앞에 펼쳐진 증거들을 보고도 쉽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멍청한 표정으로 횡설수설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다.

“아…… 아니, 유진아! 이게 다 뭐야? 진짜 수아 씨가…… 아니, 저 여자가 사기꾼이라고? 하지만 난 정말 몰랐어! 나도 저 사람한테 속은 거라고! 어머님, 아버님도 보셨잖아요! 저 사람이 워낙 감쪽같이 행동하니까 내가……”

“내 아들한테 이딴 사기꾼 년을 붙여놓은 게 누구야! 네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집에 들였으니까 이런 사단이 난 거 아니야!”

시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도현의 어깨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시아버지 역시 얼굴이 시뻘개져서 씩씩거렸지만, 들이닥친 증거의 무게에 압도되어 나를 향해 제대로 된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자신들이 무엇을 놓쳤는지 두려움에 떨며 서로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불과 십여 분 전까지만 해도 나를 '가출한 정신병자'로 몰아세우며 핏대를 세우던 집구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몰락은 처참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웠다.

이미란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자신이 거쳐 온 모든 치밀한 은폐 과정이 이토록 순식간에 발가벗겨질 줄은 몰랐다는 듯 입술을 잘게 떨었다.

더 이상 억울한 표정이나 눈물 연기로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없음을 직감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무너질 여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가정을 파탄 내며 버텨온 소시오패스 특유의 광기가 그녀의 눈빛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래! 내가 이미란이다! 왜!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가면을 완전히 내던진 이미란의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이미란은 돌변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이성을 잃고 악을 썼다.

“네가 내 모든 걸 망쳤어! 내가 그 집의 진짜 엄마가 될 수 있었는데! 네가 다 망쳤다고, 이 악랄한 년아!”

나는 그 광기 어린 발악을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허위와 망상을 무너뜨린 채로,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던졌다.

“네가 내 자리를 훔치려 들 때부터 이 결말은 정해져 있었어, 이미란.”

“허, 허억……!”

“아동복지법 위반, 감금, 그리고 신분 위조 및 사문서 위조. 네가 저지른 짓거리가 몇 개인지 경찰관님이 곧 읊어주실 거야.”

내가 시선을 살짝 돌리자, 이미란의 곁에 서 있던 경찰관 두 명이 신속하게 다가와 이미란의 양팔을 뒤로 꺾어 채웠다. 철컥, 차가운 수갑이 이미란의 손목에 채워지는 소리가 거실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피의자 이미란 씨. 아동복지법 위반 및 신분 위조 혐의로 체포합니다. 미란다 원칙을 고지합니다.”

“놔! 이거 놓으라고! 저 여자 당장 잡아가라고! 저 년이 내 자리야! 내 집이라고!”

이미란은 경찰들에게 끌려가며 미친 사람처럼 악을 썼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그녀가 입고 있던 내 명품 캐시미어 코트는 바닥에 쓸려 엉망이 되었다.

쾅— 현관문이 닫히며 이미란의 고함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거실에는 기괴한 침묵만이 남았다. 시부모님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 신음했고, 도현은 바들바들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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