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궤적 -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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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선택

무로 여관 방 안에는 찌든 등유 냄새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묵직하게 뒤섞여 있었다. 낡은 석유난로가 털털거리며 노란 불꽃을 내뿜을 때마다 그을음과 타르 탄내가 방안을 채웠다. 창밖 밤안개 너머로 북항 크레인의 붉은 점멸등이 침묵 속에서 번박였다. 썩어 문드러진 카르텔의 톱니바퀴는 이미 죽은 이들의 뼛가루를 짓이기며 돌아가고 있었다. 증거를 쥐고 있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주는 낡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코트 안쪽 주머니를 뒤적였다. 손끝에 차가운 녹음기와 휴대용 탄화수소 검출기, 구겨진 계약서 서류가 걸렸다. 방독마스크 파편과 흙 시료가 담겼던 증거 봉투의 묵직한 감촉이 가슴을 짓눌렀다. 코끝을 찌르는 특이 톨루엔과 공업용 타르의 악취는 10년 전 서해창고 참사의 잿더미를 다시 끌어올렸다. 진실을 밝히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 믿었던 집착은 기괴한 환영이 되어 그를 죄책감의 구덩이로 내몰았다.

그는 석유난로의 상부 덮개를 열었다. 불길 위로 계약서와 기록 서류들을 하나씩 떨어뜨렸다. 종이가 오그라들며 검붉은 연기와 잿가루를 뿜어냈다. 이어 녹음기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 구두굽으로 짓밟아 깨뜨린 뒤 불꽃 속으로 던져 넣었다. 탄화수소 검출기의 리셋 버튼을 누르고 배터리 팩을 분리해 기계의 기록을 영구히 잠갔다. 검출기의 붉은 표시등이 꺼지고, 타 들어가는 종이 탄내와 매캐한 잿가루만이 공기 중에 자욱하게 떠돌았다.

"연기의 흔적은 거짓말보다 진실을 말한다."

기주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잿더미가 되어가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진실을 받아줄 곳은 이 도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그것이 그가 선택한 마지막 침묵이었다.

코트 안 주머니의 가방을 고쳐 쥔 기주는 여관 방문을 열었다. 좁고 긴 복도로 눅눅한 밤안개가 흘러들었다. 그는 과거를 품은 채, 녹슨 네온사인이 울부짖는 부두의 어둠 속으로 조용히 걸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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