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의 기술자
미술관 지하 제어실의 공기는 서늘하고 건조했다. 형광등 램프가 미세한 주파수의 고주파음을 내며 떨렸고, 제어반의 수많은 LED 지시등이 규칙적인 간격으로 깜박였다. 벽면에 매립된 대형 모니터들 위로 수장고 내부를 비추는 실시간 CCTV 영상과 공조 시스템의 데이터 스트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도진은 제어실 중앙의 철제 콘솔 테이블 앞에 섰다. 그의 시선은 모니터 화면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놓인 메인 서버 단말기로 향했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차가운 알루미늄 케이스의 표면을 스쳤다.
박준태는 그로부터 세 걸음 물러나 있었다. 기름때가 묻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린 그의 손이 태블릿 PC의 모서리를 반복해서 쥐었다 폈다. 준태의 이슬 맺힌 이마와 가늘게 떨리는 동공이 제어실의 백색광 아래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침입 흔적은 제로예요."
박준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건조한 제어실 소음 속에서 묘하게 들떴다.
"바이오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으니 외부인일 리 없죠. 출입 로그를 보셨잖습니까. 마스터 키 소지자인 관장 외에는 해당 시간 동안 지하 3층에 접근한 기록이 없습니다. 제 말이 이해 안 되세요? 로그를 보면 알잖아요."
도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대답했다.
"로그는 물리적 사실을 조작하지 못합니다. 기록된 데이터가 현실과 충돌한다면, 오류는 기록 자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전제 조건에 있습니다."
"오류라니요?"
준태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그는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거칠게 두드리며 다가왔다.
"제가 이 보안 시스템을 설계하고 유지보수해 왔습니다. 지문과 정맥 인식을 동시에 요구하는 복합 보안 시스템입니다. 전원 차단 시에도 비상 배터리로 72시간 동안 기록이 보존되고 잠금 상태가 유지돼요. 뚫릴 수 없는 구조입니다."
"완벽한 시스템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도진의 시선이 준태의 눈을 향했다. 예리한 눈매가 상대의 동공을 관찰했다.
"특히 사람이 개입하는 순간, 모든 완벽함은 가설에 불과해집니다. S04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문이 열리기 5초 전에 수장고 내부 온도가 변동했습니다. 항온항습 공조 시스템의 정상적인 파형이 아니었죠. 0.3도의 상승 뒤에 급격한 하락. 이것은 내부 센서가 인위적인 환경 조작을 겪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건…… 공조기의 일시적인 오작동일 수 있습니다. 기계라는 게 가끔 부하가 걸리면……."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도진이 말을 끊었다. 그의 어조는 차가웠고, 불필요한 감정적 수식어는 일체 배제되어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통제하는 인간입니다. 수장고 내부의 환기구 기류가 역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배기구여야 할 그릴에서 외부 공기가 유입되고 있었죠. 이것은 시스템 전체의 메인 밸브가 특정 조건에서 수동으로 개조되었거나, 감시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준태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태블릿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사각지대라니요. CCTV 화각은 수장고 내부의 98퍼센트를 커버합니다. 남은 2퍼센트는 거대한 대형 조각품 뒤편의 그림자 구역뿐이에요. 하지만 거기엔 센서가 있습니다. 움직임이 감지되면 즉시 경보가 울리도록 세팅되어 있다고요."
"움직임이 아니라, 기류의 흐름이라면 어떻습니까."
도진이 한 걸음 다가갔다. 물리적인 압박감이 제어실의 공기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센서는 열원이나 물리적 움직임에 반응하지만, 미세한 압력 차이에 의한 공기의 유입은 감지하지 못합니다. 환기구의 댐퍼를 원격으로 조작해 일시적으로 역류를 유발한다면, 생체 인식 패널을 거치지 않고도 수장고 내부의 환경을 제어할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피해자의 체온을 떨어뜨려 사망 추정 시각을 교란하는 것처험 말입니다."
"헛소리 마세요!"
준태가 소리치며 태블릿을 콘솔 위에 내리쳤다. 철제 표면과 부딪히는 요란한 소음이 제어실에 울려 퍼졌다.
"그런 짓은 불가능합니다! 댐퍼 제어권은 메인 제어실의 관리자 계정으로만 접근할 수 있어요. 저 말고는 이 시스템의 코드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도진은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준태의 방어 기제가 무너지는 찰나의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관리자 계정. 그렇군요. 당신이라면 가능하겠군요."
"뭐, 뭘요……."
준태의 목소리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그의 시선이 도진의 눈을 피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관자를 타고 흘러내렸다.
"당신은 이 미술관의 보안 시스템 기술자입니다. 시스템의 완벽함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우회할 수 있는 백도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죠. '누구나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보안을 우회'하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었다면, 이 수장고의 사각지대 역시 당신이 설계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남겨둔 공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증거 있어요? 말만 그렇게 하지 마세요! 저는 기술자로서 제 임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근거를 대십시오."
도진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제어실을 채웠다.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당신이 방금 '관리자 계정'을 언급했습니다. 내가 질문한 것은 댐퍼의 물리적 위치였는데, 당신은 곧바로 제어 권한과 코드를 언급했죠. 환기구의 역류가 제어실의 메인 서버를 거쳐야만 조작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당신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준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의 등은 이미 제어실의 차가운 철제 벽면에 부딪혔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아……."
준태의 입에서 의미 없는 단발마가 새어 나왔다. 그의 손이 태블릿을 놓칠 듯이 흔들렸다.
"그게…… 그러니까……."
"말해보세요."
도진은 물리적 증거를 들이밀듯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압박을 가했다.
"시스템의 사각지대는 어디에 존재합니까. CCTV가 비추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보안 로그가 기록되지 않는 시스템 내부의 사각지대 말입니다."
"저는…… 저는 그냥 지시대로……."
준태의 방어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더 이상 기계적인 설명을 늘어놓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늘 휴대하던 태블릿 화면은 이미 절전 모드로 들어가 까만 거울처럼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지시라니요. 누구의 지시입니까."
도진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제어실 구석에 설치되어 있던 비상 인터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삐-. 삐-. 규칙적인 저주파의 경고음은 폭설로 고립된 미술관 외부의 적막을 찢고 제어실 내부의 긴장감을 극단으로 끌어올렸다.
모니터 화면 중 하나가 깜박이더니, 지하 3층 수장고 입구의 생체 인식 패널 상태를 표시하는 붉은색 텍스트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시스템 경고: 메인 서버 포트 #4에서 비정상적인 데이터 트래픽 감지. 외부 우회 접속 시도 발생.]
도진은 화면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얼어붙은 표정으로 서 있는 준태를 바라보았다. 물리적 모순은 이미 해소의 단서에 도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