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스폿 -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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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속의 고립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짙은 어둠 속에서 엉겨 붙는 눈발을 뚫고 나아갔다. 타이어가 눈을 짓밟는 소리만이 차갑고 건조한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평창동 언덕길로 진입하는 도로는 이미 하얗게 파묻혀 경계를 잃었다. 한도진은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며 계기판의 온도계를 응시했다. 영하 십이 도. 기온은 더 떨어지고 있었고, 바깥의 시정 즈음은 채 몇 미터도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 화면은 먹통이었다. 상단바에는 서비스 안 함을 뜻하는 빈 부채꼴 아이콘만이 깜빡거렸다. 기지국 통신이 두절된 지는 이미 한 시간도 더 지났다. 외부와의 연락이 끊긴 상태에서 진입로는 눈더미에 가막혀 완전히 봉쇄되었다. 폭설로 고립된 하룻밤. 특수손해사정사로서 수많은 현장을 보아왔지만, 이렇게 물리적 조건이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은 드물었다. 도진은 히터 송풍구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바람을 느끼며 차를 세웠다.

목적지는 재단법인 소속의 사립 미술관이었다. 고가의 미술품을 담보로 한 거액의 보험계약 심사를 앞두고 발생한 현장 실사 요청. 하지만 계약 체결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찾아온 이 시골길 끝의 건물은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도진은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때리며 정장 코트 자락을 거칠게 헤집었다. 장갑을 낀 손으로 코트 깃을 여미며 미술관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건물 외벽은 회색 콘크리트 마감 위에 쌓인 눈이 차갑게 반사되고 있었다. 인적이 없는 로비 자동문 앞에 서자 센서가 반응하며 유리문이 무겁게 열렸다.

로비 안쪽은 외부의 폭설 소음이 차단된 채 무덤 같은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바닥의 대리석 타일 위로 도진의 구두 가죽이 부딪히는 건조한 마찰음만이 울려 퍼졌다. 안내 데스크는 비어 있었고, 전시는 이미 끝난 시간인지 조명은 최소한의 보안등만 켜진 채 어두컴컴했다.

그때, 로비 구석에 위치한 경비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거구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군인 출신의 경비실장 장경민이었다. 그의 얼굴은 조명 아래서 이례적으로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굵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침묵을 깨웠다.

도진은 멈춰 서서 그의 정면을 응시했다. 예리한 눈매가 경민의 흔들리는 동공을 포착했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주머니 속에서 가볍게 스쳤다.

"한도진 사정사입니다. 출입 기록과 수장고 내부 온습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연락을 받고 왔지만, 통신이 끊겨 안쪽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군요."

도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감정적 동요는 섞이지 않은 건조한 어조였다.

장경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진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덩치 큰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흉터가 있는 얼굴의 근육이 경직되어 굳어 있었다.

"거기... 더 들어가지 마십시오."

경민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지만, 평소의 묵묵한 태도와는 달리 물기가 서려 있었다.

도진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무슨 일인지 명확하게 말씀하시죠."

경민은 침을 꿀꺽 삼키며 사방을 경계하듯 한 번 둘러본 뒤, 도진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낮게 짓씹듯 뱉어냈다.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하지만... 안에서 벌어진 일은 제 선에서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명확한 팩트만 말씀하십시오. 수장고에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도진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압박했다. 물리적 증거를 확인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경민은 마른세수를 하듯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수장고... 지하 3층 수장고 안에서 사람이 죽었습니다."

로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도진은 잠시 호흡을 멈추고 경민을 바라보았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고립된 공간. 철제 이중 방화문과 생체 인식 출입 통제 장치로 둘러싸인 지하 수장고는 외부의 침입이 불가능한 완벽한 밀실이었다.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는 통보는 우연의 일치도, 단순한 사고도 아니었다.

도진의 머릿속에서 즉각적으로 물리 법칙과 시간대의 연산이 시작되었다. 통신 두절, 폭설로 인한 외부 지원 불가, 그리고 닫힌 문 안쪽의 주검.

"밀실입니다."

도진이 낮게 중얼거렸다.

경민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도진은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 상황에서 개인적인 감정은 불필요합니다. 폭설 때문에 고립된 건 사실이지만, 증거는 고립되지 않습니다. 당장 현장으로 이동합니다."

도진은 경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지하 3층으로 향하는 비상 계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에폭시 코팅 바닥을 밟아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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