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도시인, 머무는 마을 -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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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마을과 카페의 문을 열다

넷째 날 아침이었다. 카페 코너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민지수는 카운터 뒤에 서서 숨을 골랐다.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암막 커튼을 살짝 걷어올리자,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던 산골 마을은 하얗고 거대한 설국으로 변해 있었다. 하늘에서는 굵은 눈발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내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치는 기록적인 폭설이었다.

지수는 이 고요하고 완벽한 고립이 나쁘지 않았다. 타인의 간섭을 피해 이곳에 온 그녀였다. 물 공급 문제로 이장인 강덕수와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이 정도 눈이라면 당분간 마을 사람들도 각자의 집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 지수는 홀로 평화로운 아침을 즐기며 마른 행주로 카운터를 닦았다. 수도 밸브는 여전히 잠겨 있어 커피를 내릴 수는 없었고, 머그잔을 매만지는 손길에는 미세한 한숨이 묻어났다.

바로 그때였다.

쾅, 쾅, 쾅.

가파르고 거친 노크 소리가 고요한 카페 안을 난폭하게 두드렸다. 지수는 미간을 좁히며 앞치마 매듭을 단단히 고쳤다. 또 강덕수일까. 아니면 물 문제로 다시 따지러 온 마을 사람일까. 지수는 귀찮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겨 출입문 쪽으로 다가갔다. 자물쇠를 풀고 문을 살짝 열자마자,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하얀 눈보라가 카페 안으로 훅 밀려들었다.

"여보쇼, 지수 양! 정신 좀 차려보라고!"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강덕수였다. 그의 깊게 패인 주름 사이로 눈가루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늘 쓰던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였다. 투박한 그의 손은 추위로 붉게 얼어 있었다. 지수는 문을 더 열지 않은 채 차분하지만 냉소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 날씨에 무슨 일이시죠? 카페는 오늘 휴업입니다."

덕수는 지수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문을 툭 밀치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의 뒤편으로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몇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회관의 보일러가 고장 났거나, 갑작스러운 폭설에 무너진 비닐하우스 때문에 갈 곳을 잃은 어르신들이었다.

"휴업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여. 마을 회관 지붕이 이번 눈에 얹혀서 버티질 못하고 주저앉았어. 당장 영감탱이들이랑 할멈들 다 얼어 죽게 생겼다고."

덕수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호탕함 대신 초조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지수는 놀란 눈으로 덕수의 뒤를 바라보았다. 카페 처마 밑과 마당 입구에는 할머니 세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덜덜 떨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장갑을 낀 채, 차가운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제 카페에 데려오시면 어떡해요. 저는 혼자 있는 게 익숙하고, 남들에게 참견받는 게 원래 좀 서툽니다."

지수가 뒤로 물러서며 선을 그었다. 그녀의 원함은 언제나 철저한 독립과 고립이었다. 타인과 섞이지 않고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이 카페의 존재 이유였다. 덕수는 그런 지수를 기가 막히는 눈으로 바라보며 언성을 높였다.

"아이고, 이 양반아! 지금 사람이 얼어 죽게 생겼는데 홀로 백년해로하겠다고 문을 닫아걸 셈이오? 저기 할멈들 입술 파랗게 질린 거 안 보여? 자네가 원하든 말든,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니야!"

"제 개인적인 사정은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제 카페는 지금 물도 제대로 안 나오거든요."

"물이야 내가 어떻게든 구해다 줄 테니까, 일단 이 사람들 안에 좀 들여보내 줘! 어?"

덕수가 무릎을 굽히며 애원하듯 말했다. 늘 꼿꼿하던 마을 이장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지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덕수의 뒤편에서 할머니 한 분이 콜록 기침을 하며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폭설은 창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바깥 세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있었다. 카페 안은 여전히 은은한 원목 톤의 온기가 남아 있었지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냉기가 지수의 발목을 적셨다. 지수는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아늑한 공간을 훑어보았다. 저곳에 타인들이 들어오는 순간, 그녀가 공들여 쌓아 올린 평화와 방어막은 무너질 터였다.

하지만 덜덜 떨며 눈을 맞고 있는 노인들의 비참한 뒷모습이 눈에 박혔다. 저들이 저러다 정말 큰일이라도 난다면, 이 따뜻한 카페 안에 혼자 처박혀 커피를 마시던 자신은 어떤 기분이 될까. 진정한 자유란 타인과의 관계를 완벽히 끊어내야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굳건한 믿음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지수는 길게 숨을 내쉬며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차가운 금속 단추가 손끝에 닿았다. 그녀는 머뭇거림을 거두고 덕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덕수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확 번졌다.

"오, 그래! 고마워, 양반장!"

덕수가 뒤를 돌아 노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리들 들어오슈! 따뜻하니까 걱정 말고!"

어르신들이 차례차례 카페 안으로 발을 디뎠다. 눈이 녹아내린 젖은 신발 자국이 깔끔한 마루 바닥을 더럽혔지만, 지수는 더 이상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가 비어 있는 머그잔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메뉴판은 따로 없습니다.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보리차라도 내어드릴게요."

지수가 차분하지만 약간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들은 자리에 앉으며 덕분에 살았다는 인사를 건넸고, 덕수는 밀짚모자를 벗어 탁자에 툭 내려놓았다.

바깥에는 여전히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카페 안은 예상치 못한 온기로 서서히 채워지고 있었다. 지수는 마른 찻잔을 정리하며 암막 커튼을 완전히 걷어냈다. 하얗게 뒤덮인 창밖 풍경 너머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숨 쉴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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