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도시인, 머무는 마을 -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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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화해의 시작

셋째 날 저녁 6시를 알리는 방송이 마을 회관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축제의 열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마당 한켠에 마련된 평상과 긴 테이블 위에는 주민들이 가져온 음식들이 가득했다. 지수는 부침개를 부치느라 기름때가 묻은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채, 회관 마당 구석의 벤치에 잠시 주저앉았다. 허리를 펴자 지긋한 통증이 올라왔다. 종일 뜨거운 무쇠 팬 앞에서 부침개를 뒤집느라 팔목이 욱신거렸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며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던 삶. 그 독립적인 생활 방식을 지키기 위해 이 산골 마을로 들어왔건만, 지난 며칠간 그녀는 마을 회관 주방에서 이웃들과 부대끼며 커다란 대야에 담긴 김치를 썰고 전을 부쳐냈다.

"아이구, 다리야. 지수 양, 수고 많았어."

박소사가 다가와 지수의 어깨를 툭툭 치며 건네는 말에 지수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아닙니다. 저야 뭐, 이 정도는 괜찮은데요."

차분한 표준어로 대답하며 지수는 마당 중앙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굵은 패딩 점퍼를 입은 강덕수가 마을 주민들과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깊게 패인 주름과 투박한 손, 언제나 벗지 않는 밀짚모자 대신 오늘은 이장이라는 완장을 찬 채 사람들을 통솔하는 그의 모습은 지수에게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였다.

수도 밸브를 잠그며 카페 운영을 마비시키고, 오전 6시와 오후 7시라는 터무니없는 규칙을 들이밀던 그 고집스러운 노인. 지수는 여전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의 생활 방식을 무시당한 기분이었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흔들리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방에서 풍기는 고소한 전 부치는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지수는 자신이 은근히 이 소란스러운 풍경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묘한 배신감이자 당혹스러움이었다.

그때, 덕수가 대화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지수가 앉아 있는 벤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지수의 심장이 미세하게 내려앉았다. 또 잔소리를 시작할 참이었다. 덕수는 지수 앞까지 와서 멈춰 서더니,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힐끗 지수를 내려다보았다.

"여보쇼, 지수 양."

덕수의 투박한 목소리에 지수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방어적인 태도가 절로 튀어나왔다.

"제 개인적인 사정은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오늘 일은 할 만큼 했습니다."

지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여전한 잔소리를 받아치겠다는 태세였다. 그러나 덕수는 예전처럼 버럭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그는 텁텁한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턱을 긁적였다.

"아이고, 누가 일 안 했다고 그러남. 내가 언제 일 안 했다고 화를 냈어."

덕수의 뜻밖의 반응에 지수는 살짝 눈을 깜빡였다. 덕수는 벤치 구석에 엉덩이를 걸치며 앉았다. 노인의 투박한 셔츠 소매에는 김치 국물이 살짝 튀어 있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이장 노릇을 십 년 넘게 했어. 그러다 보니 눈에 뵈는 게 다 이 마을 사람들이고, 어떻게든 이 산골짜기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남는 것만 신경 썼지방.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면 솔직히 겁부터 나더라고. 금방 도망쳐 버릴 뜨내기들인가 싶기도 하고."

덕수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호통 대신 묘한 피로와 씁쓸함이 묻어났다. 지수는 예기치 못한 그의 고백에 반사적으로 세웠던 방어벽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카페 물을 끊고 규칙을 강요하시는 건 지나치셨어요. 저는 제 방식대로 조용히 지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지수가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덕수는 잠시 말없이 마당에서 뛰놀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툭 내뱉듯 말했다.

"그래, 자네 말이 맞어. 내가 너무 꽉 막히게 굴었네. 이 동네 방식만 고집하느라 사람이 온 걸 환영할 줄을 몰랐어."

덕수가 머쓱한 듯 밀짚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 거칠고 투박한 손마디에서 삶의 연륜이 느껴졌다.

지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에게서 사과 비슷한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언제나 규칙과 통제를 앞세우던 이장이 이토록 쉽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이야.

폐쇄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밀어내며, 진정한 자유는 관계를 끊어내는 데 있다고 믿었던 지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혼자 있는 것이 익숙하고 참견받는 것이 서툴러서 쌓아 올린 벽이었지만, 그 벽 너머에서 건네는 이 투박한 사과는 생각보다 무겁지 않게 지수의 마음에 닿았다.

지수는 덕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사과하시는 거예요, 지금?"

"암, 이장이 잘못했으면 사과도 할 줄 알아야지. 원, 사람 참 사람 무안하게 만드네."

덕수가 짐짓 헛기침을 하며 눈을 피했다. 그 모습이 어딘지 허술하고 인간적으로 보여서, 지수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던 서늘한 경계심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완벽하게 갈등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물 공급 문제나 사소한 생활 습관을 두고 부딪힐 일은 많을 터였다. 하지만 덕수의 그 한마디는 지수에게 거대한 산골 마을이라는 공동체와의 관계 맺기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은 걷어내 주었다.

지수는 앞치마의 매듭을 다시 한번 질끈 고쳐 매고는 벤치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이장님. 사과하셨으니까 저기 남은 전이나 마저 부치러 가시죠. 손놀림 좀 더 붙이셔야 할 겁니다."

지수의 가벼운 농담에 덕수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거 보소, 젊은 양반이 아주 사람 부려 먹는 데는 선수라니까."

두 사람은 나란히 마당을 가로질러 시끌벅적한 축제의 현장으로 걸어갔다. 어색하지만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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