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도시인, 머무는 마을 -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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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부치기의 고통과 엿듣는 이야기

마을 회관 주방 안은 뜨거운 기름 냄새와 수증기로 가득했다. 지수는 넓은 무쇠 팬 앞에 서서 부침개를 뒤집었다. 앞치마를 둘렀지만 이미 미세한 기름방울이 셔츠 소매에 튀어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는 습기에 살짝 헝클어져 이마에 붙었다.

"아이쿠, 뒤집는 솜씨가 아주 요란하구만. 그러다 찢어지겠어."

옆에서 커다란 대야에 부칠 김치를 치대던 박소사가 껄껄 웃었다. 지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팬을 내리누르듯 뒤집개를 움직였다.

"제 평생 부침개를 이렇게 대량으로 부쳐본 적은 없어서요."

지수의 차분한 목소리에 주방 한켠에서 고추를 다듬던 할머니가 거들었다.

"도시에서 온 처년이 뭘 알겠나. 원래 축제라는 게 손이 많이 가는 법이여."

지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빨리 이 지옥 같은 전 부치기를 끝내고 카페로 돌아가고 싶었다. 수도 밸브를 잠그는 협박에 밀려 마지못해 끌려나오긴 했지만, 이 육체노동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어깨와 손목이 뻐근해져 왔다.

그때, 주방 문가 쪽에서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덕수 이장이었다. 그는 밀짚모자를 손에 든 채 마당 쪽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어이, 청년회장은 마당 파라솔 좀 더 단단히 묶어! 내일 바람 분다잖아."

덕수는 지시를 마치고는 자연스럽게 주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기름 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지수 쪽을 힐끗 보았다. 지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팬 위로 시선을 고정했다. 덕수가 툭 던지듯 말했다.

"지수 양, 힘들다고 울상 짓지 말고 요령껏 해. 거 참 손끝이 야무치지 못해서야 원."

지수는 참지 못하고 뒤집개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해요, 남들에게 참견받는 게 원래 좀 서툴고요. 그리고 애써서 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따, 성질머리 하고는. 농담도 못 하겠네."

덕수는 혀를 차며 주방을 지나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지수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가늘게 눈을 흘겼다. 저 영감탱이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카페 안에서 조용히 원두를 갈고 있었을 것이다.

덕수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 문이 반쯤 닫히자, 주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박소사는 부치던 김치를 대야에 툭 던져두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도 덕수 영감이 저래 보여도 마음은 쓰앵님 생각뿐이여."

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저를요? 제 물을 끊어놓고 협박한 사람이요?"

다른 할머니가 대파를 다듬다 말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이 사람아. 그 양반이 왜 그랬겠어. 저 아래 김 반장이 네 카페 보더니 젊은 사람이 저렇게 외진 데서 장사하다 망해 나간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걱정하더라고. 덕수 그 양반이 이장 타이틀 달고 있으니 동네에 들어온 사람이 또 상처받고 떠나는 꼴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지수는 손에 쥐고 있던 뒤집개를 멈췄다.

"망해요? 제가 왜요?"

"도시에서 와서 커피 판다고 하니까 주민들은 좀 걱정스럽지. 여기 할매 할배들이 에스프레소인가 뭔가를 마시겄어? 믹스커피 타 마시지. 게다가 네가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맨날 커튼을 꼭꼭 닫아걸고 있으니, 원주민들 시선엔방어적으로 보였던 거여. 이 동네는 정 주고 살아야 하는 곳인데 방을 얻어 숨어 있으니..."

박소사가 수세미로 대야를 박박 닦으며 말을 이었다.

"덕수 영감이 너 처음에 왔을 때 그랬어. 저 처년 오래 못 버티고 도망갈 거라고. 근데 네가 고집스럽게 문을 닫고 버티니까 오기가 생긴 거지. 사람들과 섞여야 마을 사람이지, 고립되면 안 된다 이거야."

지수는 가슴속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자신은 이 마을 사람들을 무례하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방해꾼으로만 여겼다. 도시의 차가운 시선에서 벗어나 완벽한 고립을 누리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걱정한 것은 어쩌면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의 안위였을지도 몰랐다.

창고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덕수가 다시 걸어 나왔다. 그는 손에 빈 플라스틱 통을 들고 있었다. 지수는 덕수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시선을 피하며 다시 무쇠 팬으로 반죽을 부어 넣었다.

덕수는 지수의 곁을 지나치며 툭 한마디 던졌다.

"기름 튀니까 앞치마 단추나 좀 더 채워. 내일 축제 당일엔 사람 많아서 정신없을 테니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네."

지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전과 달리 힘이 빠져 있었다. 덕수는 그 반응이 이상하다는 듯 힐끗 눈을 흘기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주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지수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엉켰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삶. 그것이 자신이 이 산골 마을로 도망쳐 온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 본 마을은 차갑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그들의 거친 참견 속에는 묘하게 투박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

지수는 지글거리는 기름 소리를 들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마음속을 꽁꽁 에워싸고 있던 차가운 경계심의 장벽이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자, 이제 전은 이만하면 됐고, 김치나 마저 썰어보자고. 지수 양, 손놀림 좀 더 붙여봐."

박소사의 호탕한 목소리에 지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앞치마끈을 질끈 고쳐 매고는 다시 대야 쪽으로 다가갔다. 어색하지만,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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