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도시인, 머무는 마을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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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된 카페의 적막

지수는 그 여운 속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카페 안은 덕수가 남기고 간 냉랭한 공기로 가득했다. 머그잔을 씻으려 틀어본 수도꼭지는 툭툭 소리만 낼 뿐 물 한 모금 내어주지 않았다. 오전 6시와 오후 7시. 마을의 이장이라는 남자가 선언한 그 두 번의 시간 외에는 물 한 방울 쓸 수 없다는 통보였다. 지수는 콧방귀를 뀌며 싱크대 상판을 짚었다. 허섭스레한 규칙으로 사람을 길들이려 하다니 웃기는 소리였다. 그녀는 덕수의 간섭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의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리라 다짐했다.

카페 코너의 실내는 아늑했다. 벽면에 걸린 지역 사진과 목재 테이블들은 여전히 정돈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수는 앞치마의 주름을 반듯하게 펴고 카운터 뒤로 걸어 들어갔다. 커피 머신 전원을 켜려다 이내 손을 멈췄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에스프레소를 내릴 수도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원두 통을 열었다. 콜롬비아 원두 특유의 캐러멜과 견과류 같은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물이 없어도 향을 맡는 것 정도는 문제없었다. 지수는 머그잔에 원두 가루를 조금 덜어내어 향을 음미했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해요, 남들에게 참견받는 게 원래 좀 서툴고요."

지수는 빈 공간을 향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이 산골 마을에 온 것은 누구의 참견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타인과의 관계는 복잡하고 피곤할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었다. 카페의 문을 닫고 암막 커튼을 내리면 그곳은 완벽한 요새가 되었다. 덕수가 아무리 문을 두드리고 억지 규칙을 들이밀어도 자신의 성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을 터였다.

지수는 카운터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하지만 눈은 글자 위를 겉돌았다. 바깥은 너무나 조용했다. 평소라면 산책하는 등산객이나 마을 주민들의 발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외부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것처럼 적막했다. 시계 바늘이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카페 안의 온도는 적당했지만, 어딘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수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답답한 공기를 환기하고 싶었다. 그녀는 창문을 가로막고 있는 암막 커튼을 살짝 걷어올렸다. 유리창 너머로 가을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마을 도로가 보였다. 평온한 풍경이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다.

창가에 바짝 다가간 지수의 눈방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카페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동이 유독 이상했다. 마을 주민들이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주 잠깐 시선을 던질 뿐, 누구도 카페 코너의 문 앞에는 머물지 않았다. 장을 보러 나가는 듯한 할머니 한 분이 지수의 시선과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전염병이라도 돌고 있는 집을 지나치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뒤, 이웃 주민인 중년 남성이 자전거를 끌고 가다가 카페 간판을 바라보았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누군가 볼세라 빠르게 페달을 밟아 사라졌다. 지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사 온 직후 마을 회관에 들렀을 때만 해도 주민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떡을 건네며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가. 비록 그 친절이 부담스러워 거리를 두긴 했지만, 지금의 태도는 그와는 결이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회피였다. 명백한 기피와 배척의 눈빛이었다.

문득 덕수가 남기고 갔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마을의 규칙, 공동체의 질서, 그리고 외부인. 덕수는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남겼을지도 몰랐다. 저 유난 떠는 외부인의 가게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고. 지수의 카페는 어느새 마을 안에서 철저하게 금지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수는 창문에 손을 올렸다. 단단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세계가 완전히 갈라져 있었다. 카페 안은 그녀 혼자만의 자유로운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유폐된 방공호이기도 했다. 창밖의 사람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서로 눈을 맞추며 웃고 떠드는데, 오직 자신만이 그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제 개인적인 사정은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지수가 낮게 읊조린 대사는 빈 공기 속으로 허무하게 흩어졌다. 방어하기 위해 세운 벽이 어느새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어 있었다.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한 대가로 얻은 것은 완벽한 평화가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드는 지독한 고립이었다.

차가운 유리창을 통해 전해지는 온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수는 손을 거두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가슴 한구석에서 묵직한 돌덩이가 아래로 쿵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덕수의 간섭을 비웃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려던 계획은 완전히 무너졌다. 마을 안에서 자신은 완벽하게 고립되었다.

사방이 막힌 밀실 같은 카페 안에서 지수는 홀로 남겨졌다. 창밖의 따스한 햇살과 대조적으로, 그녀의 등 뒤로는 서늘한 막막함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누군가의 목소리도, 발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지수는 자신이 얼마나 혼자였는지를 비로소 뼈저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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