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의 불청객 방문
하지만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문밖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에스프레소 잔을 싱크대에 내려놓기가 무섭고도 조용한 순간이었다. 쿵, 쿵. 누군가 유리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였다. 지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출입문은 분명히 잠겨 있었고, 창문에는 암막 커튼이 빈틈없이 내려져 있었다. 영업 준비 중이라는 팻말도 아직 내걸지 않은 상태였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이 공간에 누군가 찾아올 리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문을 흔드는그 소리와 함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쇼, 안에 사람 있는 거 다 아는데 문 좀 열어보슈."
지수의 미간이 더 깊게 좁혀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지난번에 마을 회관에서 스치듯 만났던 이장, 강덕수였다. 깊게 패인 주름과 투박한 손, 그리고 항상 쓰고 다니는 밀짚모자가 저절로 연상되는 목소리였다. 지수는 나가는 대신 카운터 뒤에 가만히 섰다. 무시하면 이따가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 여겼다. 그녀는 타인과의 관계를 일부러 만들지 않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누군가의 참견이나 불청객의 방문은 그녀의 계산에 전혀 없던 항목이었다.
그러나 바깥의 기척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문고리가 덜컥거리더니 이내 묵직한 손바닥이 유리를 다시 한번 쳤다.
"아이고, 대낮부터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안에 숨어 있기요? 이 동네 규칙은 제대로 알고 카페를 연 거요?"
더 이상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지수는 길게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나가 암막 커튼의 끝을 살짝 걷어올렸다. 창밖에는 어두운 밀짚모자를 쓴 강덕수가 서 있었다. 그는 지수가 나타나자마자 턱을 치켜들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출입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아주 조금만 열었다. 차가운 가을바람과 함께 덕수의 텁텁한 입김이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지금은 영업 시간 전입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준비가 아직 안 끝났고요."
지수는 최대한 차분하고 정중한 표준어를 골라 사용했다. 목소리에는 서늘한 기색이 묻어났다. 하지만 강덕수는 그런 기류를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툭 밀며 안쪽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영업 전이고 자시고, 내 말이 먼저요. 자네,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사람을 이리 가려 받는 거요? 아침부터 문을 꽉꽉 닫아걸고 뭐 하는 짓이람."
"제 개인적인 사정은 굳이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지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덕수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카페 안을 슥 둘러보더니 벽에 걸린 수공예품과 목재 테이블을 훑었다.
"보기엔 번지르르하게 차려놨지만, 시골이란 데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요. 다들 내 걱정해서 하는 소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내 말 좀 잘 들으라고 했잖소!"
"걱정해 주시는 건 감사한데, 제 가게는 제 방식대로 운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의 사생활에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는 건 좀 곤란한데요."
지수의 목소리가 한 톤 낮아졌다. 감정 수치는 이미 아래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고, 이런 식의 침입은 그 방어막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불쾌한 자극이었다. 덕수는 지수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고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팔짱을 끼며 더 큰 목소리로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참견이 아니구만. 이 동네는 다 같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야. 혼자 잘났다고 문 잠그고 틀어박혀 있으면 마을에 폐를 끼치는 거나 다름없단 말이지. 눈이 많이 오거나 할 때 협조도 안 할 사람이랑 누가 이웃으로 지내겠어?"
마을 생활 규칙이라는 단어가 덕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눈이 올 때 주민 모두가 치우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둥, 외부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는 둥의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지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속에서부터 차오르는 짜증을 느꼈다. 진정한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그녀에게, 공동체라는 이름의 굴레는 족쇄와 다름없었다.
"폐를 끼친 적 없습니다. 규칙이라는 것도 제가 여기에 피해를 준 적이 없으니 지금 하시는 말씀은 지나치시네요."
"지나치긴 뭐가 지나쳐! 젊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와서 며칠 장사하다가 힘들다고 도망가는 걸 내가 한두 번 본 줄 아쇼? 다 똑같은 뜨내기들처럼 굴 테니까 내가 미리 단도리하는 거 아니겠어."
뜨내기라는 단어가 지수의 귀를 정확히 때렸다.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동안 유지하던 차분한 미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눈빛에는 날카로운 냉소가 스며들었다. 지수는 카운터 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덕수를 똑바로 응시했다.
"제가 뜨내기든 아니든, 그건 이장님께서 판단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 가게 운영에 이런 식으로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건 명백한 월권이에요."
덕수는 지수가 자신에게 지지 않고 또박또박 대꾸하자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평소 마을에서 주민들을 이끌며 큰 소리를 치는 데 익숙했던 그로서는, 서울에서 온 젊은 여자가 이토록 차갑게 응수하는 것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 봐라? 말을 아주 당돌하게 하는구만. 내가 이 동네 이장으로서 마을 질서 잡는 게 월권이요? 자네가 여기서 장사하려면 사방에 얼굴도 좀 익히고 주민들 눈치도 볼 줄 알아야지, 어디서 건방지게……."
"건방지다니요."
지수가 말을 끊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감정은 이미 마이너스 바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제 돈으로 제 공간을 얻어서 제 손으로 커피를 내리겠다는데, 제가 왜 마을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죠? 이장님 말씀대로라면 저는 이 동네에 녹아들기 위해 제 사생활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런 식이라면 애초에 이 마을에 온 걸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덕수는 지수의 입에서 '후회'라는 단어가 나오자 순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눈빛에는 여전히 팽팽한 불만이 서려 있었다. 카페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것처럼 무거워졌다. 커피 향이 감돌아야 할 공간은 두 사람 사이의 날 선 기싸움으로 가득 찼다.
"그래, 자네 마음대로 해보슈.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우리 마을 사람들은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덕수는 콧김을 흥 뿜어내며 몸을 돌렸다. 그는 문을 쾅 닫고 나가는 대신, 밖에서 문을 거칠게 밀치며 투박한 발소리를 남기고 멀어져 갔다.
지수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카운터에 손을 짚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완벽하게 고요할 줄 알았던 오후는 이장의 방문 하나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녀는 숨을 깊게 몰아쉬며 아까 마시다 만 에스프레소 잔을 집어들었다. 차가워진 액체는 입안에서 썼고, 마음은 그보다 더 씁쓸하게 굳어갔다. 타인과의 벽을 더 높이 쌓아야겠다는 결심만이 머릿속을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