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스폿 -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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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온항습 시스템의 균열

지하 수장고 중앙 서버실의 공기는 건조했다. 항온항습 시스템의 저주파 소음만이 가늘게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한도진은 벽면에 매립된 메인 서버 랙 앞으로 걸어갔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차가운 철제 프레임에 닿았다. 그의 시선은 랙 하단에 위치한 포트 #4의 인디케이터 램프에 고정되었다. 규칙적인 녹색 점멸 사이로 불규칙한 주기의 오렌지색 데이터 패킷이 섞여 있었다.

박준태가 그 뒤를 바짝 쫓으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 PC의 액정 화면이 형광등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기록을 더 볼 필요는 없습니다, 한 사정사님. 이미 보셨잖습니까. 메인 서버의 로그는 지난 72시간 동안 단 한 차례의 외부 접속이나 비정상 패킷 수신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출입 로그 역시 깨끗합니다. 바이오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으니 외부인일 리 없죠.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침입 흔적은 제로예요."

박준태의 목소리는 다급함과 함께 미묘한 떨림을 품고 있었다. 그는 태블릿 화면을 도진의 눈앞으로 들이밀며 화면 속 수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제 말이 이해 안 되세요? 로그를 보면 알잖아요. 이 데이터는 물리적으로 위조가 불가능한 타입의 실시간 백업입니다. 하드웨어 레벨에서 암호화되어 있어요. 제 말이 맞죠? 시스템 오류라거나 외부 조작이 있었다는 건 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습니다."

도진은 박준태가 내밀어 낸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서버 랙의 하단 패널을 열고 포트 #4에 연결된 통신 케이블의 단자를 확인했다. 단자 주변에는 납땜이나 물리적 커넥터 교체의 흔적이 없었다. 소프트웨어적인 접근이었다.

도진이 고개를 돌려 박준태를 응시했다. 예리한 눈빛이 상대의 동공 흔들림을 포착했다.

"시스템은 완벽하겠죠. 당신이 설계한 구조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완벽한 건 시스템이 아니라, 당신이 숨기려 하는 허점입니다."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지금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저는 보안 시스템 기술자입니다. 이 수장고의 무결성을 유지하는 게 제 임무라고요."

박준태는 목소리를 높였다. 작업복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쳐내는 손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진은 대답 대신 자신의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태블릿을 꺼내 터치패널을 두드렸다. 화면 위로 지하 수장고의 실시간 온습도 모니터링 그래프가 붉은색과 푸른색의 곡선으로 얽혀 나타났다.

[A] 실시간 온습도 모니터링 시스템은 수장고 내부에 설치된 센서를 통해 온도와 습도를 지속적으로 기록한다. 그 기록의 X축은 시간, Y축은 물리적 수치였다.

도진이 화면을 확대해 특정 시간대의 구간을 박준태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사건 발생 추정 시각 전후의 데이터입니다. 수장고 내부는 상시 20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그래프의 파형을 보십시오. 정확히 사망 추정 시각 15분 전, 온도가 0.3도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박준태는 화면을 보며 인상을 썼다. 그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그건…… 센서의 일시적인 오류입니다. 극저온 상태의 유물이나 공조기 댐퍼의 순간적인 기계적 노후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노이즈예요. 대형 공조 시스템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데이터 분석을 그런 식으로 왜곡하지 마십시오."

"기계적 오류는 무작위한 노이즈를 발생시키지, 규칙적인 패턴을 만들지 않습니다."

도진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그는 그래프의 특정 구간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0.3도의 상승은 냉매 밸브가 강제로 개방되기 직전, 배관 내부의 압력이 급변하면서 발생한 물리적 열 손실입니다. 그 직후의 급격한 하락은 자연스러운 대류 현상이 아니라, 외부에서 강제로 냉매를 주입해 공기를 급랭시킨 결과물입니다. 이것은 기계적 오류가 아닙니다. 인위적인 제어 명령이 입력된 증거입니다."

박준태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태블릿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흰 장갑을 끼지 않은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증거라니요? 그런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은 관리자 계정 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계정은……."

"관장 외에는 소지자가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메인 서버 포트 #4에 연결된 이더넷 케이블의 트래픽은 내부의 로컬 단말기가 아니라, 이 서버실 내부에 숨겨진 별도의 미니 PC나 우회 접속 장치를 통해 릴레이 방식으로 주입되었습니다. 외부 침입이 불가능하다면, 이 수장고의 시스템 권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자는 기술자인 당신뿐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제 알리바이는 완벽합니다. 저는 통제실에서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박준태의 목소리가 서버실의 철제 벽면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그는 한걸음 물러서며 태블릿을 가슴에 품었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기술은 절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그의 믿음이 스스로의 논리에 의해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진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의 정장 차림은 흐트러짐이 없었으나, 태도에는 틈이 없었다.

"당신은 시스템의 오류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오류가 아니라 의도된 조작이라면, 당신이 세운 알리바이는 완전히 무너집니다. 사망 시각에 수장고 내부의 온도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시신의 경직 시간을 조작하고, 감식 결과를 교란하려 한 것. 그것이 이 데이터가 증명하는 진실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가 로그를 다시 분석해 보면……."

박준태는 더듬거리며 태블릿의 화면을 난폭하게 두드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자판 위에서 멈춰 섰다. 화면 상단에 붉은색 경고 문구가 점멸하고 있었다.

[SYS_ERR: OVERRIDE_LOG_MUTATED]

시스템 조작의 흔적이 하드웨어 로그의 기저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박준태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그의 어깨가 미세하게 처졌다.

도진은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차가운 서버실의 공기 속에서, 물리적 모순을 거부하는 증거들은 이미 침묵으로 범인의 알리바이를 해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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