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알리바이
미술관 지하 수장고 입구의 공기는 차가웠다. 외부 기온은 영하 12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폭설로 고립된 건물 내부 역시 난방이 원활하지 않아 입김마다 하얗게 흩어졌다. 한도진은 손가락 끝의 굳은살을 문지르며 태블릿 PC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는 수장고 내부의 실시간 온습도 그래프와 출입 로그가 나란히 떠 있었다.
임소현은 날카로운 안경테를 치켜올리며 도진을 응시했다. 그녀의 창백한 안색은 피로와 극도의 불안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제 감정 결과나 출입 기록에 의문을 가지시는 건가요?"
소현의 목소리는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출입 로그를 다시 보죠. 당신은 밤 11시 정각에 정맥 인증으로 수장고에 들어갔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그렇군요. 하지만 시스템 데이터를 제공한 박준태 씨의 로그와는 정확히 14분의 공백이 존재합니다."
도진의 시선이 소현을 거쳐 옆에 서 있던 박준태에게로 옮겨갔다. 준태는 늘 휴대하는 태블릿을 거칠게 두드리며 기름때 묻은 작업복 소매로 땀을 훔쳤다.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침입 흔적은 제로예요. 바이오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으니 외부인일 리 없죠. 제 말이 이해 안 되세요? 로그를 보면 알잖아요."
준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다급한 손놀림은 태블릿 화면 위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로그는 조작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물리적 시간은 조작되었습니다."
도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박준태 씨. 당신은 분명 밤 11시 직전, 보안 서버의 비정상적인 트래픽을 차단하기 위해 메인터네넌스 포트를 수동으로 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임소현 씨는 그 시각에 정확히 수장고 내부에서 정맥 인증을 통과했고요. 문제는 두 사람의 진술이 물리적으로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무슨 소리죠? 제 작업은 규정대로였습니다."
준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제가 뭘 잘못한 거죠?"
"서버의 로그 기록과 수장고 내부의 온습도 변화 그래프를 대조해 보십시오."
도진이 태블릿을 두 사람의 눈앞에 내밀었다.
"임소현 씨가 수장고에 진입했다고 기록된 시각, 내부 온도는 0.3도가 떨어졌습니다. 비상등만 켜진 상태에서 환기구의 역방향 기류가 발생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하죠. 완벽한 밀실이라던 수장고 안에서 공기의 유동이 감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현은 화면을 응시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세련된 절제된 복장이 어색할 정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제가… 제가 그 안에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위작 논란이 있던 작품의 상태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서였어요. 그 이상은 없습니다. 제 감정 결과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라면 멈추세요."
"미학적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진실은 당신이 알 바가 아닙니다."
도진의 차가운 대답에 소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박준태 씨. 당신은 비상 배터리와 전원 차단 상태가 정상이라 주장했지만, 서버 룸의 메인 로그에는 밤 11시 정각에 외부로 향하는 임시 패킷 전송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수장고 내부의 생체 인식 패널을 원격으로 해제할 수 있는 유일한 포트가 그때 열렸죠."
준태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는 태블릿을 떨어뜨릴 듯 움켜쥐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잠깐만요. 그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는 단지 보안 시스템을 점검했을 뿐이에요. 저 여자가… 임 감정사가 시킨 겁니다! 수장고 안쪽의 네트워크 단말기를 열어달라고 요구한 건 저 사람이었어요!"
공간의 온도가 더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소현은 준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안경 너머로 노골적인 경멸과 분노가 스쳤다.
"박준태 씨, 지금 뭐라고 했죠? 책임을 전가하겠다는 건가요? 당신이 부정한 돈을 받기 위해 시스템의 허점을 열어두었다는 사실은 백일하에 드러날 겁니다."
"당신이 먼저 위작을 은폐하려고 저한테 거래를 제안했잖아! 수장고 문을 열어두면 완벽한 알리바이가 될 거라고 한 건 당신이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철제 방화문 복도에 메마르게 부딪혔다.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며 대립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이성적인 감정사나 기술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짜여 있던 공고한 연합은 단 몇 마디의 논리적 모속 지적 앞에 순식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진은 그들의 다툼을 가만히 응시했다.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비난은 물리적 증거 앞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설계된 결과물입니다."
도진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두 사람은 다툼을 멈추고 동시에 도진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의 말은 전부 거짓이군요. 근거를 대세요. 11시 정각의 출입 로그와 환기구의 기류, 그리고 서버의 외부 패킷 전송. 이 모든 물리적 사실은 두 사람이 공모하여 밀실 내부의 조건을 인위적으로 조작했음을 가리킵니다."
"도진 씨, 당신 지금..."
소현이 무언가 반박하려 했지만, 도진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 상황에서 개인적인 감정은 불필요합니다. 폭설 때문에 고립된 건 사실이지만, 증거는 고립되지 않습니다. 모순은 물리 법칙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도진은 다시 한 번 수장고의 철제 이중 방화문을 바라보았다. 자외선 감식등으로 확인했던 미세한 잔상과 환기구의 기류,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쏟아낸 폭로의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정확한 좌표로 정렬되고 있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외부의 침입이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밀실 내부의 물리적 환경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라면, 범행을 저지른 주체는 이 밀실의 구조와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내부자들 중 한 명, 혹은 그 공조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이 명백해졌다. 남은 것은 그 설계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